MA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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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본 우리나라
해양생물의 역사

글. 김종성 박사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해양생물 기록의 시작

우리나라의 해양생물에 대한 기록의 역사는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5년 국보 285호로 지정된 경북 울주군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가 그 주인공입니다. 한반도 최고령의 반구대 암각화는 농경, 목축 등과 함께 정착 생활이 시작됐던 신석기시대(기원전 8000년~) 후기부터 청동기시대(기원전 6000년~)에 걸쳐 새겨졌다고 해요. 당시 사회상을 대변하듯 각종 동물상, 인물상, 그리고 다양한 도구 등 총 300여 점의 형상이 담겨있는데요, 당시 수렵채집사회를 반영하듯 동물상이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림1.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출처: 국립중앙박물관-e뮤지엄)

흥미로운 점은 바로 현대의 ‘해양생물’에 대한 기록도 여기에 담겨있다는 점이에요.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참고래, 귀신고래, 향유고래 등 대형고래류와 바다거북, 물개, 물고기, 바닷새 등 다양한 해양생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호랑이, 사슴, 멧돼지와 같은 육상동물의 형상도 많습니다. 이쯤 되면, 당시 바다에서는 배를 타고 고래나 물고기 잡고, 육상에서는 활과 화살로 사냥하던 선사시대의 인류상이 그려지죠? 특히,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를 사냥하는 모습은 세계 최고령의 포경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고래 떼를 이끄는 듯한 세 마리 거북, 고래 주변을 맴도는 바닷새 무리, 그리고 물 위를 나는 듯한 연어의 형상까지 선사인의 세심한 관찰력과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걸작이죠.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올라있다고 하는데 곧 정식 등재가 되어 전 세계에 한민족의 기상과 역사가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해양생물과 관련한 또 다른 선사시대의 기록으로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패총’을 들 수 있습니다. 패총은 선사인이 먹고 버린 조가비와 쓰레기가 쌓여 조개더미 유적이 된 것인데요. 1930년대 일본인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됐고, 1960년대 말부터 국립중앙박물관, 부산시 등의 본격적인 발굴을 통해 최근까지도 매우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합니다. 신석기시대 대표적 토기로 알려진 ‘빗살무늬토기’ 등의 토기류와 골각기, 석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발굴됐고, 해양생물의 잔해도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30여 종의 조개류, 도미 등의 각종 생선뼈와 고래뼈 등을 통해 부산 인근 앞바다의 해양생물상도 짐작이 되죠? 대형 굴 껍데기도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깊은 바다에서 잠수하면서 굴도 채취했음을 시사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바다는 인간에게 어패류를 공급해주는 보배와 같은 존재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생활 속 해양생물 기록 찾기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 「우해이어보」(김려, 1803), 근대 해양박물지로 알려진 「자산어보」(정약전, 1814), 방대한 어원연구서인 「아언각비」(정약용, 1819), 그리고 기타 「동국여지승람」, 「지봉유설」, 「난호어목지」, 「임원경제지」, 「규합총서」, 「삼국사기」 등 우리나라의 해양생물에 대한 기록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중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영화로도 나왔듯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해양생물도감으로 인정받고 있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 여러 유학자의 반발을 우려하여 그 기록은 생생하지만 아쉬운 글로만 남아있죠. 한편, 일부 기록의 경우 수생생물을 그림으로 자세히 묘사한 예도 있습니다. 어해화의 일인자로 평가받는 옥산 장한종(1768~1815)은 「어해병풍」에 66종 이상의 수생생물을 정밀하게 묘사하여 생물의 외양, 생태, 서식지 등에 관한 지식을 그림으로 남겼다고 해요.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어해도를 그리던 화가들도 생물의 형태나 특징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게 됐다고 합니다. 현재 국립생물자원관에는 장한종이 극묘사한 다양한 어패류와 갑각류를 재현해서 생물표본도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다니 놀랍죠?
한편, 일찍이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에도 고래에 대해 언급한 기록이 나온다고 해요. 용의 아홉 아들 중 셋째 포뢰(蒲牢)가 엄청난 덩치로 물보라를 내뽑는 동물을 보고 너무 놀라 산천이 떠나가도록 울었다는 내용인데요. 여기서, 이 동물이 ‘포뢰를 두드려 울린다.’ 해서 ‘고뢰(叩牢)’라 이름 붙여진 것이라 하네요. 그래서 선조들은 종소리를 더욱 크게 울리기 위해 종을 매다는 곳에 포뢰를 조각하고, 고래 모양으로 만든 당목(撞木)으로 종을 쳐왔다고 합니다.
예부터 내려온 속담에도 해양생물이 자주 등장하죠. ‘문어 제 다리 뜯어먹는 격’, ‘고래 힘줄 같은 고집’, ‘독 속의 게’, ‘복어 이 갈 듯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등 다양한 해양생물이 나오는데, 여기서 우리는 주인공인 각종 해양생물의 독특한 생태적 특성도 엿볼 수 있죠. 놀랍지 않나요?

그림2. 장한종(1768-1815). 어개화첩, 게와 가오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e뮤지엄)

환경변화에 따른 해양생물의 기록

역사 속에서 해양환경 변화에 대한 기록을 통해 특별한 해양생물을 유추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적조’ 는 하구나 연안에서 육상 등으로부터 공급된 영양염이 풍부해지면서 특정 식물플랑크톤 군집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일컫는데요. 식물플랑크톤이 가진 붉은색 색소체의 영향으로 해수의 색도 적색으로 보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해양환경과 해양생물의 상호작용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 적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다름 아닌 「구약성서」 제2강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바로 “강물이 모두 피로 변하여 고기가 죽고 물은 냄새가 나서 마실 수 없었다”라는 구절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적조가 최초로 기록된 것은 삼국시대로 알려져 있답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선덕여왕 8년 가을 7월에 “동해의 물이 붉은색으로 변하고 수온이 올라서 고기가 죽었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수온이 오르면서 식물플랑크톤이 이상 번식하여 바닷물이 붉게 변하고 그 영향으로 물고기가 호흡을 못해 폐사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죠.
「조선왕조실록」에도 적조에 대한 기록이 제법 많이 나옵니다. 기장 임을포-가을포 적조(태종 3년 7월 24일), 경남 고성 박도·번계포 등지 열흘간 적조(태종 3년 8월 1일), 경남 진해 적조(태종 3년 8월 14일), 경남 진해 적조(태종 3년 9월 14일), 경남 거제 적조(세종 5년 7월 16일) 등인데요. 사실 경남의 기장, 진해, 거제 등지는 현재도 남해안 여름철 적조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이 기록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없을 것 같네요.

해양생물에 관한 다양한 역사적 기록

반구대 암각화에는 그물을 이용해 고래를 잡는 형상이 새겨져 있고, 부산 동삼동 패총에도 출토된 토기 표면에는 미세한 그물망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로부터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어획이나 사냥을 위해 그물을 사용하는 지혜를 발휘했음을 알 수 있죠.
조선 순조 때 실학자 서유구는 총 113권 52책의 「임원경제지」란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바로 조선 후기 농업, 어업, 의학 등과 관련한 수많은 지식과 기술이 집적된 일종의 백과사전인데요, 그중 「전어지(권39~40)」에는 가축과 야생동물 및 어류에 대한 소개와 함께 물고기를 잡는 다양한 방법과 어구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해양생물의 기록을 넘어 수산자원으로서의 가치까지 담아낸 훌륭한 기록임이 틀림없죠.
「세종실록」 150권 지리지 경상도편에도 어피, 대구어, 문어, 상어, 건조된 물고기, 전복, 홍합, 어교 등 각 지방의 다양한 특산물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한편, 조선 시대에는 바다에서 잠수를 통해 전복과 물고기 등을 잡아 진상하는 포작(남)과 잠녀(여)라는 직업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1629년 이건의 「제주풍토기」에 잠녀들이 전복을 채취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잠녀의 물질에 대한 기록은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나오는데, 「삼국사기」와 「고구려본기」에 “섭라(제주)에서 야명주(진주)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이를 반증합니다. 수산업 발전과 관련한 근대의 기록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지리학자 요시다 게이치가 쓴 「조선수산개발사」에 자세히 나온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해양생물의 기록은 계속된다!!

우리나라의 해양생물 기록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냥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선조들의 해양생물에 대한 관찰과 생태적 경험은 자연스럽게 식생활 등의 문화로 발전하여 정착됐다고 할 수 있겠네요. 조선 시대의 수많은 기록, 그리고 광복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해양생물에 관한 연구는 계속해서 세계적인 기록으로 그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 소개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국가해양수산생물종목록집」(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양생물은 대략 15,000여 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세계적 수준의 해양생물다양성에 대한 기록을 통해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해양생물에 대한 기록과 과학적 연구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종성 교수

프로필(Profile)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블루카본사업단장
서울대학교 해양환경영향평가연구단장
서울대학교 연안융복합연구센터장
(사)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