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이 무엇일까요? DNA 바코딩, 제주 신종과 시민과학까지

‘개도박’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으면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옛사람들의 생활 지혜, 해조류 분류학, DNA 분석, 제주 바다의 신종 발견, 그리고 시민과학까지 이어집니다.
제주 바다 조간대 웅덩이에서 붉게 자라는 홍조류 개도박속(Pachymeniopsis)

‘개도박’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겼을까

개도박속(Genus Pachymeniopsis)은 홍조류 도박목(Order Halymeniales), 지누아리과(Family Grateloupiaceae)에 속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종이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개도박, 참개도박, 띠개도박, 멍석개도박, 덩이개도박 등 5종 모두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식물 이름에서 접두사 ‘개-’는 대체로 기준이 되는 식물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쓰임이나 성질이 다르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도박’은 어디에서 온 이름일까요? 정확한 기원은 단정하기 어렵지만, 우리 조상들이 홍조류인 도박을 천연 식물성 접착제로 사용한 데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포 자락에 바르는 박(풀)’이라는 뜻에서 ‘도박’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명입니다.

과거 ‘도박’이라 불리며 풀을 쑤는 재료로 이용된 종의 이름은 Pachymeniopsis elliptica(참개도박)입니다. 엽체를 끓여 만든 풀을 석회와 섞어 회벽을 바르는 데 활용했습니다. 반면 개도박(P. lanceolata)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엽체가 훨씬 두껍고 가죽질이어서, 가마솥에 고아도 참개도박만큼 풀이 잘 우러나지 않았습니다. 모양은 닮았지만 접착제로서의 품질이 떨어졌기 때문에 ‘개도박’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겉모습이 닮아도 DNA는 다르다

참개도박과 개도박의 엽체 표본 비교 도판 (A-F: 참개도박, G-K: 개도박)

그림 1.A-F: 참개도박 Pachymeniopsis elliptica, G-K: 개도박 Pachymeniopsis lanceolata

참개도박과 개도박은 외형이 매우 유사해 바닷가에서 육안으로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그림 1). 제주대학교 해조류 계통분류학 연구실은 두 종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DNA 바코딩을 적용했고, 그 결과 두 종이 유전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Yang et al. 2013).

용어 한눈에 보기 | DNA 바코딩
생물의 특정 DNA 구간을 비교해 종을 식별하는 방법입니다. 겉모습이 매우 비슷한 종을 구분할 때 유용합니다.

두 종의 지리적 분포와 유전적 다양성을 비교한 후속 연구에서는 개도박이 더 높은 유전적 다양성을 보이고 낮은 수온에도 적응해 넓게 분포하는 반면, 참개도박은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낮아 환경 변화에 더 취약할 가능성이 제시되었습니다(Yang et al. 2021). 이는 과거부터 천연 접착제로 활용되어 온 참개도박의 보전 전략을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과거 ‘도박’이라 불리던 종이 오늘날에는 왜 ‘참개도박’이 되었을까요? 답은 계통분류학의 명명 체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개도박속을 대표하는 기준종(Type Species)의 한국명이 ‘개도박(P. lanceolata)’으로 정해지면서, 과거 ‘도박’이라 불리던 P. elliptica는 현재 ‘참개도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제주 바다에서 발견한 두 신종

제주 바닷속 암반에 편평하게 붙어 자라는 붉은 멍석개도박

그림 2.멍석개도박 Pachymeniopsis volvita Yang & Kim 2015

우리나라에 보고된 개도박속 5종 가운데 멍석개도박(P. volvita)과 덩이개도박(P. shinchonai)은 제주대학교 해조류 계통분류학 연구실에서 발표한 신종입니다. 새로운 생물을 발견하고 이름을 부여해 생물다양성 목록에 등재하는 일은 그 생물을 과학적으로 기록하는 출발점입니다. 또한 신종은 국가 생물자원으로서 연구와 활용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습니다.

멍석개도박은 제주도 시흥리 바닷속 수심 10~15m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바위에 편평하게 붙어 있는 엽체를 떼어내면 멍석처럼 도르르 말리는 특징 때문에 ‘멍석개도박’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Yang & Kim 2015). 이후 가파도, 태흥, 무릉, 강정, 섶섬, 외도 등 제주 여러 지역의 조하대에서도 발견되었으며, 여름철에 주로 생식기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

조하대 암반에 붙어 있는 어린 멍석개도박은 얼룩도박(Grateloupia kurogii)과 매우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다른 종은 아닐까’라는 호기심으로 표본을 채집해 분석한 결과, 그 개체는 과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익숙해 보이는 생물을 다시 살펴보는 관찰이 신종 발견으로 이어진 사례입니다.

초등학생의 발견이 신종의 이름이 되다

조간대에서 엽체가 빽빽하게 구형으로 모여 자라는 덩이개도박

그림 3.덩이개도박 Pachymeniopsis shinchonai Yang & Kim 2025

덩이개도박은 제주도 신촌리 앞 조간대에서 신촌초등학교 과학탐구동아리 학생들이 처음 발견한 개체를 분석해 신종으로 보고한 사례입니다(그림 3). 학명 Pachymeniopsis shinchonai의 종소명 ‘shinchonai’는 시민과학자로 참여한 신촌초등학교 학생들의 의미 있는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부여되었습니다.

시민과학의 성과

전문 연구자가 아닌 학생들의 관찰이 신종 발견의 출발점이 되었고, 그 의미가 종의 학명에까지 남았습니다. 시민과학이 생물다양성 탐색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덩이개도박은 조간대에서 엽체가 빽빽하게 구형으로 모여 자라며, 꽃지누아리(Grateloupia imbricata)의 생육 모습과 비슷한 형태를 보입니다. 이러한 특징을 반영해 국명은 ‘덩이개도박’으로 정했습니다. 해조류 계통분류학을 이어갈 학문후속세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해조류 다양성을 지속적으로 탐색하려면 시민과학자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왜 개도박속을 계속 연구해야 할까

홍조류 개도박속은 한국·일본·중국 등 북서 태평양 연안에 흔히 자생합니다. 기후변화 관련 연구에 따르면 개도박은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열대우림보다 5배 이상 탁월하여 블루카본의 생물자원 중 하나입니다. 또한 참개도박 추출물은 항비만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었고, 전통적으로 건축 미장 재료의 천연 접착제, 한지와 섬유의 결합제·고착제 등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활용 가치와 함께 보전의 이유도 분명합니다. 각각의 해조류는 고유한 유전적 조성을 지니며, 다른 생물 및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갑니다. 해조류의 다양성이 풍부할수록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해양 생태계의 기능도 다양해집니다. 해조류 계통분류학자들이 종을 찾고, 이름을 붙이고, 기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은 존재를 기록하는 일입니다. 제주 바다의 작은 해조류 한 종을 제대로 알아보는 일에서 생물다양성 보전은 시작됩니다.
기고자 김명숙 제주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프로필 사진

프로필(Profile)

제주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제주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장
제주대학교 자율운영중점연구사업단장
아열대해양식물 기탁등록보존기관장

M.Y. Yang, E.G. Han & M.S. Kim. 2013. Molecular identification of Grateloupia elliptica and G. lanceolata (Rhodophyta) inferred from plastid rbcL and mitochondrial COI genes sequence data. Genes & Genomics 35: 239-246.

M.Y. Yang and M.S. Kim. 2015. Taxonomy of Grateloupia (Halymeniales, Rhodophyta) by DNA barcode marker analysis and a description of Pachymeniopsis volvita sp. nov. J. Appl. Phycol. 27: 1373-1384, DOI 10.1007/s10811-014-0432-1.

M.Y. Yang, S.Y. Kim, and M.S. Kim. 20210721. Population genetic structure and phylogeography of co-distributed Pachymeniopsis species (Rhodophyta) along the coast of Korea and Japan. Diversity, 13(8), 336; https://doi.org/10.3390/d13080336.

M.Y. Yang and M.S. Kim. 20250318. Unveiling a novel species, Pachymeniopsis shinchonai sp. nov., from Korea, with reference to phylogenetic relationships within the Grateloupiaceae (Halymeniales, Rhodophyta). Botanica Marina, Online.

김명숙
김명숙
제주대학교 생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