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여름, 태평양전쟁 당시 침몰한 일본 화물선 장산호를 찾기 위해 서해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한 달간 머물렀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반복되는 탐사 작업 도중 바다 속에서 마주한 것은 역사적 흔적이 아니었다. 조수간만의 차이로 빠르게 흐르는 조류는 바다로 흘러드는 개흙이나 부유물들이 가라앉을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요동치게 하는 바람에 수중 시야가 10cm도 확보되지 않는다.

초음파(SONAR, Sound Navigation And Ranging)로 수심 30m에 가라앉아 있는 선박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스쿠버장비를 이용 침몰 선박에 도착한 후 손으로 더듬어가며 조심스럽게 움직였었다. 조금 움직이다 보면 손끝에 걸리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물이었다. 50년 넘는 시간 동안 바다를 떠돌던 폐그물들이 켜켜이 쌓인 채 조류에 떠밀려 흐느적거리다 몸에 닿는 느낌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그물이 몸을 훓고 지날 때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쓰레기 폐그물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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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면에 방치된 폐어구들의 모습니다. 이들 폐어구는 바다생물들에게 치명적인 덫이 될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잘개 쪼개져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야기한다.

2000번이 넘는 수중활동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바다 속에서 폐그물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두렵다. 특히 시야 확보가 어려운 환경에서 몸이 그물에 얽히는 순간, 탈출은 쉽지 않다. 폐그물은 인간에게도 위험하지만, 바다 생물에게는 치명적인 덫이다. 그물에 갇힌 물고기들은 빠져나오지 못한 채 죽어가고, 그 사체를 먹기 위해 다른 생물들이 접근하다 다시 그물에 갇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를 ‘유령어업’이라 부른다.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근 통영 사량도 연안 수중 조사를 진행하며 바닥에 겹겹이 쌓인 폐그물들이 확인되었다. 형태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그물은 조류에 따라 움직이며 주변 환경을 끊임없이 훼손하고 있었다. 그물 속에는 이미 부패가 진행된 어류의 사체들이 엉켜 있었고, 이를 먹기 위해 접근한 또 다른 생물들 역시 그물에 갇혀 있었다. 다른 해역 상황도 다르지 않다. 우리 연안 곳곳에 버려진 통발과 폐그물 속에서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발견된다. 살아 있는 채로 서서히 죽어가는 개체들, 이미 부패가 시작된 사체들, 그리고 이를 먹기 위해 모여든 또 다른 생물들까지—그 장면은 생태계의 붕괴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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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에서 조류에 따라 흐느적거리는 폐그물과의 만남은 상당히 공포스럽다.

유령어업으로 인한 피해는 단순한 생태계 교란을 넘어 경제적 손실로도 이어진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의하면 연간 약 3,700억~4,000억 원 규모의 수산업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연간 어획량의 약 10%에 달하는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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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어망 속에 갇힌 물고기들을 포식하기 위해 불가사리들이 달려들고 있다. 불가사리는 바다의 해적동물로 알려져있지만 토속종인 별불가사리들은 죽은 바다동물의 사체를 포식해 분해하기에 청소부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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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어망 속에 갇힌 물고기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이는 물고기들에게도 끔찍한 일이지만 유령어업으로 인한 조업량 손실 뿐만 아니라 바다속 부영양화 문제를 불러온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폐어구들이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문제의 본질은 재료에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물은 나일론과 같은 합성수지로 만들어진다. 과거 면사를 사용하던 시기와 달리, 1970년대 이후 나일론 그물은 대량 생산과 높은 내구성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론적으로는 반영구적인 수명을 가지지만, 실제 조업 과정에서는 손상과 엉킴으로 인해 평균 3개월에서 길게는 2~3년 정도 사용되고 버려진다.

바다에 버려지는 것은 그물뿐만 아니다. 통발과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스티로폼 부이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러한 어구들은 정형화된 형태로 바다에 머무르지 않는다. 햇빛과 파도에 의해 부서진 부이는 수십만 개의 작은 입자로 쪼개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천억 개 이상의 미세플라스틱으로 확산된다. 미세플라스틱은 해양 생물의 호흡과 먹이활동을 통해 체내로 유입되고, 먹이사슬을 따라 축적되어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자연계에서 플라스틱을 완전히 분해할 수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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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굴, 멍게, 가리비 양식장에 부이로 사용되는 스티로폼들이 바다에 방치되면 햇빛과 파도에 의해 부서져 수십만 개의 작은 입자로 쪼개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천억 개 이상의 미세플라스틱으로 확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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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집된 스티로폼들. 잘게 부서지면서 수천억 개 이상의 미세플라스틱으로 확산된다.

이처럼 바다 표층은 스티로폼에서 유래한 미세플라스틱으로, 바다 속은 폐어구에서 발생한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되고 있다. 이제 문제는 분명해졌다. 폐어구 문제는 단순한 어업 부산물이 아니라,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바다생물 뿐 아니라 인류 건강과 직결된 문제다. 그렇다면 해법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현재 진행 중인 폐어구 수거 활동은 분명 의미가 있다. 전국 각지에서 스쿠버 다이버들이 자발적으로 바다 정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바다에 유실된 모든 폐어구를 수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거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따라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버려지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버려져도 문제가 되지 않게 하는 것”으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기술개발로 이어졌다. 2002년 국립수산과학원은 생분해성 수지로 만든 어구 개발에 착수했고, 2007년 실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이 그물은 바다에서 2~5년이 지나면 완전히 분해된다. 세계 최초의 사례로,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다.

물론 과제도 있다. 기존 나일론 그물보다 1.6~2배 높은 가격은 보급 확대의 걸림돌이다. 그러나 정부의 보조금 정책과 어민 지원 사업이 병행된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한 문제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교체 비용의 절반 이상을 지원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며, 사용하는 어민들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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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에 나선 스쿠버다이버들이 바다 속 폐어구를 수거하고 있다.

결국 해결의 열쇠는 정책과 인식에 있다. 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지원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어업인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의 전환에 동참해야 한다. 동시에 소비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환경을 고려한 소비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결코 무한하지 않다. 우리가 버린 폐그물은 미세플라스틱이라는 형태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지금 이 문제를 외면한다면, 그 대가는 결국 우리의 건강과 미래 세대의 삶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인식의 전환, 정책의 결단, 그리고 실천이다. 바다를 지키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박수현
박수현
영산대학교 특임교수, 수중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