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NE – 미래 IN
해양 식량과 인류 역사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인간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양하겠으나, 대체로 동양에서는 의식주를 꼽았다. 어쩌면 이것은 생활 요소가 아니라, 생존 요소일 것이다. 옷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에, 빙하시대 인간의 생존에 가장 크게 기여했던 것이 옷을 기우는 바늘이었다고 한다.
미래 IN
글.김수암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인류 문명과 식량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인간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양하겠으나, 대체로 동양에서는 의식주를 꼽았다. 어쩌면 이것은 생활 요소가 아니라, 생존 요소일 것이다. 옷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에, 빙하시대 인간의 생존에 가장 크게 기여했던 것이 옷을 기우는 바늘이었다고 한다. 집은 추위와 맹수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식량을 비축할 수 있게 하며, 가족들과의 유대를 돈독하게 한다. 식량은 말할 것도 없다. 단 며칠을 굶어도 우리는 하늘이 노래지고 힘이 없어 비틀거린다. 이런 점에서 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마도 우리의 먹거리인 식량일 것이다.
식량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황금빛으로 익은 벼, 관개 시설을 따라 펼쳐진 넓은 농경지를 연상하게 된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서, 농업의 잉여 생산을 바탕으로 형성된 도시와 국가, 문명의 발전과 흥망을 설명하는 데 식량 생산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처럼 인류의 발전은 농업에 크게 의존하였고, 인류의 역사는 주로 육지에서의 활동, 육지 중심의 사고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인류의 발전 과정을 설명할 때 바다의 존재와 중요성이 너무 간과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바다는 오랜 시간 동안 인류에게 여러 혜택을 제공해 왔고, 때로는 문명의 향방을 결정짓는 숨은 동력이었다. 특히 조개와 물고기를 포함하여 바다에서 수확되는 여러 동식물로부터 얻어진 해양 식량은 단순히 영양분을 제공하는 부식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 전략과 이동, 교역과 제국 형성에 깊숙이 관여해 왔었다. 이 글은 인류 역사 속에서 바다로부터 생산된 해양 식량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식량과 기후변화의 문제 속에서 해양 식량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다시 묻고자 한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식량 동반자, 해양 식량
수렵시대에 인간은 자연에서 열매를 채취하거나 사냥으로 식량을 충당하였다. 육지에는 숲과 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수많은 동식물이 경쟁하면서 살았고, 이 안에서 인류도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함께 해야 했었다. 하지만, 야생의 자연에서의 식량 확보는 항상 위험한 일이었다. 포식자가 항상 들끓고 있었고, 커다란 짐승을 사냥하는 공동체 작업에는 큰 위험이 수반되었다. 이에 반하여, 강, 호수, 바다에서 얻는 수산 식량은 비교적 안전하고 확실한 식량이었다. 이 시기의 수산 식량은 단순한 칼로리 공급원을 넘어, 인류 사회의 위험 관리 전략이었다. 육상 생물자원이 고갈되거나 사냥에 실패했을 때, 물에 서식하는 생물들은, 특히 바다 생물들은 인류에게 비교적 안정적인 대안을 제공했다. 인류가 특정 지역에 정착하고, 때로는 장거리 이동을 감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식량 보험’으로서의 수산자원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류가 바다를 식량의 원천으로 인식한 시점은 생각보다 이르다. 전 세계 연안 지역에서 발견되는 조개더미(shell middens)는 해양 식량이 우연적 선택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이용된 주요 식량원이었음을 보여준다. 불확실한 사냥에 의존하던 시기에 연안은 인류에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식량 창고였다. 조개류는 채집이 비교적 쉽고, 계절적 변동이 크지 않으며, 어린이와 노약자도 쉽게 식량 획득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안정성을 제공했다. 또한, 연어와 같은 회귀성 어종은 인류 사회에 독특한 질서를 부여했다. 북태평양과 북대서양 연안의 원주민 사회는 연어가 모천으로 회유하는 시기와 장소를 정확히 인식했고, 이를 중심으로 계절적 노동과 의례, 저장과 분배 체계를 발전시켰다. (그림 1) 연어는 단기간에 대량 확보가 가능하면서도 예측성이 높아, 잉여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잉여 생산에 대한 건조와 훈제 기술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식량을 이동시키는 혁신적 기술이었다.

(a)

(b)
그림 1.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연어. (a) 프랑스의 Lortet 동굴에서 발견된 동물뼈에 새겨진 순록과 연어(약 17,000년 전), (b) 일본 고대 마을에서의 연어 건조 풍경 상상도(출처: Brian Fagan의 Fishing(2017))
바다가 연 세계의 문: 대구와 청어
중세 유럽에 이르러 해양 식량은 지역 생존의 문제를 넘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북대서양의 대구와 청어였다. 흥미로운 점은, 북대서양의 차가운 해역에 서식하던 대구를 어획하기 위하여 콜럼버스 이전부터 북유럽의 어부들이 대서양을 건너 뉴펀들랜드 인근 어장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신대륙의 어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어부들은 일찍이 장거리 항해를 해 왔던 것이다. 이후, 대서양 횡단과 같은 장기간 항해에 말린 대구는 필수적인 식량이 되었고, 대구는 신대륙과의 무역, 유럽의 경제력 강화와 도시화에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작용하였다. 한편, 종교는 대구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렸다. 전통적 가톨릭 사회에서는 금요일과 사순절에 육류 섭취가 금지되는 식생활 규범이 있었다. 물고기는 육식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생선 특히 대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대구는 종교적 제도와 결합된 경제 자원이 되었으며, 국제 교역의 핵심 산업으로 부상하여 베르겐, 런던 같은 항구 도시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구가 대서양 세계를 열었다면, 청어는 유럽 내부의 경제와 권력 구조를 재편했다. 회유성 어종인 청어는 바다에서 대규모 군집을 이루며 이동했고, 이를 효과적으로 포획하고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국가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네덜란드는 청어 내장을 제거하고 염장하는 가공 기술을 발전시켜, 저장성과 상품 가치를 크게 높였다. 청어 어업의 발전은 조선업과 항해술, 금융 제도의 성장을 동반했다. 어선을 건조하기 위한 기술, 장거리 항해를 가능하게 하는 해양 지식, 그리고 어업 투자와 수익 분배를 위한 금융 시스템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면서, 사회의 각 분야가 현대적 틀로 변신하도록 작용했다. 그 결과, 청어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한다는 차원을 넘어, 네덜란드가 해상 패권을 장악하는 데 기여한 핵심적 전략 자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는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었던 바다가, 특정 국가의 소유권이 인정되어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현대 식량 체계 속의 수산 식품과 기후변화
육상에서는 거의 모든 야생동물에 대한 포획이 금지된 현실이지만, 바다에서는 일부 보호종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자유스러운 포획 활동이 가능하다. 오늘날 인류의 식량 체계는 여전히 농업 생산이 식량 공급의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많은 연안 국가와 도서 지역, 개발도상국에서는 해양 어류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핵심 단백질원이기도 하다. 더욱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에서도 해양 어류가 건강에 좋은 웰빙 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수산 식품 소비가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인구 증가에 따른 미래 식량 공급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이다. 어류 양식으로부터의 생산은 거의 100%가 우리의 식량으로 이용되지만, 어로 활동에 의한 어획물의 경우는 총 생산량의 약 90%가 우리의 먹거리로 이용된다. 이들 어류는 단백질 공급의 측면뿐만이 아니라, 단위 단백질당 환경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식품으로 인정되어 인류 사회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식량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연, 바다에서의 식량 생산은 우리의 수요를 어느 정도까지 충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해양 식량의 미래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변수와 마주하고 있다. 해양 온난화와 산성화, 저산소 수괴의 확대는 어류의 분포와 생산성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미 많은 어종의 서식 해역이 고위도로 이동된 것이 관측되고 있으며(그림 2), 이는 기존의 어업 구조와 연안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는 단순한 어획량 변동의 문제만이 아니라, 종 조성의 변화와 먹이망 구조의 재편, 가입(recruitment)의 불안정성에 영향을 미쳐 어업의 예측 정확성을 낮추고 있다. 이는 인류 역사에서 수산 식량이 제공해 왔던 ‘안정성’이라는 장점이 더 이상 보장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해양 식량의 미래가 완전히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생태계 기반 수산자원 관리, 기후 적응형 양식 시스템, 양식 생물종의 개발은 식량 생산과 환경 보전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해조류와 이매패류 양식은 탄소 흡수와 수질 개선이라는 부가적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며, 기후변화 대응과 식량 생산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림 2. 해수의 온난화에 따라 2050년까지 많은 어류종이 10년에 평균 40-45 km의 속도로 고위도 해역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한다(Cheung et al. 2009).
바다와 다시 맺는 계약
인류는 오랜 역사 동안 바다로부터 식량을 얻어 문명을 확장해 왔다. 조개와 연어, 대구와 청어는 각각의 시대에서 인류 사회의 요구에 응답해 왔으며, 해양 식량은 늘 중요한 선택지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또다시 전환점에 서 있다. 과거 바다가 인류에게 제공했던 풍요는 자연의 선물이었지만, 미래의 해양 식량은 인류의 선택과 책임에 달려 있다. 해양 식량의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그것은 바다와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지속가능한 식량 체계를 설계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인류가 앞으로도 바다와 함께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바다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가 아니라, “지구 생태계와의 상생을 위해 바다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로.
김수암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
중국해양대학교 객좌교수
미국 스미스소니언 과학교육센터 과학자 홍보대사 (Scientist Ambassado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