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NE – 해양 IN

복잡한 바다 속에 숨어 있는 질서의 과학, 창발 현상

물고기 한 마리가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은 보기에 좋다. 하지만, 수백만 마리의 물고기가 물속에서 떼를 지어 현란하게 움직이는 광경은 보기에 좋다는 느낌을 넘어, 생명의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해양 IN

글.김수암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창발이란 무엇인가: 혼돈 속의 질서

물고기 한 마리가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은 보기에 좋다. 하지만, 수백만 마리의 물고기가 물속에서 떼를 지어 현란하게 움직이는 광경은 보기에 좋다는 느낌을 넘어, 생명의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보면 어지러이 움직이는 것이 혼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각 물고기는 주변의 다른 물고기와 거리를 유지하고 방향을 맞추려는 규칙을 갖고 행동한다. 이러한 개체의 작은 행동은 물고기가 떼를 이루게 하며, 향도나 지도자도 없지만, 무리 전체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하여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그림 1). 더욱이, 그들을 잡아먹는 큰 물고기를 요리조리 피하는 재주도 유별나다. 결국, 각각의 물고기는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개체 어류로서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행동이 집단적으로는 마치 한 몸처럼 헤엄치는 형태로 바뀌어 포식자로부터의 회피 능력을 향상하는 결과를 갖게 되거나, 회유 경로를 최적화함으로써 에너지 소모를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각 개체가 주변의 다른 개체와 혹은 서식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할 때, 전체가 나타내는 집합적 효과는 개체별 행동으로부터 나오는 효과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데, 이를 창발(emergence)이라고 한다. 물고기 떼 이외에도,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기러기와 초식동물, 꿀벌과 개미의 집단행동, 동기화되어 번쩍이는 반딧불이 등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창발 현상이다.

창발은 물리학, 생물학, 사회과학을 관통하는 개념으로, 개별 요소들의 단순한 합을 넘어 상호작용을 통해 예기치 못한 새로운 성질이나 패턴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창발 개념은 19세기 철학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나, 자연과학의 틀 안에서 자리 잡고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부터였다. 생물학에서는 뇌의 의식을 뉴런의 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발 현상으로 보았고, 물리학계에서는 낮은 온도에서 전자(electron)들이 모여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전기저항이 없어지게 만드는 초전도 현상을 창발로 보았다. 또한, 최근에는 여러 구성 요소가 서로 강하게 작용하여 개별 요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계 과학이 부상하면서 지구 시스템 과학 분야에서 기후-해양-생태계를 연결하며 나타나는 대규모 변동을 창발 현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현상에서 더 나아가, 아이가 자라면서 인격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 도시에서 사람들이 이웃을 이루는 현상 그리고 중력에 의해 우주 먼지 등이 모여 온도가 임계치를 넘기면서 별이 탄생되는 과정 등을 모두 창발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우주에서 창발이 아닌 현상이 없다고 보는 것이 요즘 학계의 관점이다.

(그림 1) 물속에서 무리를 이루고 있는 어류

바다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창발 장면들

바다 또한 창발의 무대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바다는 푸른 물결과 수평선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더 세밀히 살펴보면, 바다에서는 수온, 염분, 햇빛, 바람, 해류, 미생물, 영양염, 플랑크톤, 어류 등 수 많은 요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혀 새로운 해양 패턴을 만들고 있다. 그 패턴이 바로 바다의 ‘언어’이며, 그것을 해독하는 것이 해양학자의 주요 과제이다. 즉, 바다는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엄정한 질서가 존재하며,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바다 모습은 복잡한 창발 과정의 한 단면일 뿐이다. 바다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창발 현상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

(1) 해류 특성의 변화와 생태계의 변화
바다의 물은 결코 단순히 흐르지 않는다. 미세한 난류들이 서로 부딪치고 합쳐지며, 지구 자전에 따라 생성되는 물리법칙에 따라 북태평양 환류와 같은 거대한 해류 순환을 만들어 낸다. 이 거대한 해류는 기후시스템과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해양의 특성이 수십 년의 주기를 가지고 변동되는 것이다. 이를 기후의 레짐 시프트(climate regime shift)라고 하며, 기후의 체제가 변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가 바뀌면 해양생태계도 큰 영향을 받는다. 즉, 수온이 임계점을 넘어가면 갑작스럽게 생물군이 붕괴하거나 증가되는 생태계 레짐 시프트가 유발되어 생물군이 바뀌게 된다. 또한, 해수온과 대기압의 국지적 변화가 지역 생태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거나, 전 지구적 기후 패턴으로 확산되는 경우가 있는데, 10년 미만의 짧은 주기로 페루 앞바다에서 발생하는 ENSO(엘니뇨-남방진동)는 그 해역 멸치 자원을 붕괴시킬 뿐만 아니라, 전 지구의 곳곳에 가뭄과 홍수를 발생시키는 대표적 창발 패턴이다.

(2) 보이지 않는 숲, 플랑크톤의 대발생
플랑크톤은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미세한 생물이지만, 바다 먹이망의 근간을 이루는 존재이다. 플랑크톤의 번성 여부에 따라 포식자인 어류와 포유류는 영향을 받는다. 햇빛, 수온, 영양염의 유입 등이 어우러지면서 일정한 조건이 만들어지면 플랑크톤은 폭발적으로 증식하며, 바다의 색깔까지 바꾸기도 한다. 위성사진에서 관찰되는 초록빛 소용돌이, 그것은 미시적 생명체들이 바다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만들어 낸 거대한 창발의 시각화이다. 이 현상은 전 지구 탄소 순환과 산소 공급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특정 유해 조류가 크게 번성하게 되면 생태계의 다른 생물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3) 물고기의 가입
어류 개체군 변동 역시 창발 현상이다. 물고기가 태어나 성어가 되는 시점을 어업에 가입(recruitment)된다고 정의하는데, 야생에서 어미가 산란한 수십만 개의 알 중에서 성어가 되기까지 살아남는 개체는 극히 적다. 즉, 해류의 흐름, 수온, 먹이생물의 밀도 등 해양의 환경 조건의 미묘한 조합에 따라 알 혹은 치어의 생존율이 결정되는데, 살아남기에 좋은 환경이 유지되면 가입량이 증가하여 어업은 풍어를 누릴 수 있게 되고, 아니면 그 반대가 된다. 이 가입 과정은 하나의 환경 요소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수많은 환경 요인들의 상호작용이 어류의 각 생활사 시기 별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때 어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지만, 아직도 현대과학에서는 이 과정을 명쾌하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 활동과 바다의 반응

인간은 태고부터 바다를 이용해 왔고, 바다도 인간의 활동에 끊임없이 반응해 왔다. 바다는 자연생태계일 뿐 아니라, 인간 사회와 맞물린 복잡계이기도 하므로, 인간의 행동 또한 바다 시스템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어업이나 연안 개발 등 인위적 활동은 인류에게 경제적 여유를 선사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양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거나 교란하면서 인위적 개입에 의한 창발 효과를 유발한다. 요즘에는 바다 환경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이것 또한 인간의 개입으로 인한 창발 조건이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 활동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질서에 어떠한 것이 있는지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1) 특정 어종의 남획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
어류 서식지에서 어업이 장기간 지속되면, 그 해역에서 주요 포식자 역할을 하던 큰 어종이 사라져버리고, 포식자의 감소에 따라 경쟁하던 다른 종이 급격히 번성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혹은 큰 어류가 사라진 이후에, 작은 어류가 우점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먹이망 하향 어업(fishing down foodweb)’이라고 한다(그림 2). 이것은 인간 활동이 개입된 사회-생태적 창발(socio-ecological emergence)의 사례이다.

(2) 생태계기반 수산자원관리의 도입
최근, 선진국과 여러 국제수산기구에서는 생태계기반 수산자원관리(ecosystem-based fisheries management)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의 어종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종 간, 혹은 생태계 전체의 상호작용을 고려하고, 창발적 패턴을 관리 대상으로 삼는 패러다임이다. 즉, 바다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예측보다는 관계의 이해를 중시하는 새로운 차원의 자원관리 모델이다.

(3) 해양보호구역 지정과 서식처 정화·복원 활동
해양의 특정 지역을 어획금지 구역으로 설정하면, 보호구역 내부에서 어류 개체군이 자율적으로 회복되고, 해양보호구역 경계 밖의 인접 어장에서의 어획량도 늘어나는 개체군 확산효과가 나타난다. 이는 정책적 조치가 직접 ‘어획량 증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생태계 내부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원량이 증가될 수 있는 창발적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식생 복원사업은 자생적 생태계를 회복시키려는 조치로, 인간의 ‘초기 조건’ 제공이 다양한 생물종과 환경 요인이 맞물려 생물자원량이 자율적으로 증가하는 창발적 결과를 낳았다. 미국 체사피크만에서 잘피 씨앗을 대규모로 뿌렸을 때, 초기에는 미미했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퇴적물 안정화, 산소 공급, 어류 산란장 제공 등과 같은 물리·화학·생물적 상호작용이 결합되어 생태계 회복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이는, 인간 개입이 창발적 회복 경로의 촉진제 역할을 한 대표적 사례이다.

창발의 바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

창발의 관점에서 보면, 바다의 변화는 ‘복잡하지만 혼돈이 아닌’ 세계이며, 수많은 요인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자연의 언어이자, 새로운 질서이다. 예측 불가능해 보이는 해양과 같은 복잡계를 이해하고, 창발적 질서를 읽어내는 것이 해양 과학의 궁극적 목표이다. 바다의 질서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우리가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이 문제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인류의 해양 관리, 자원 보존,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핵심 역량을 키우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림 2) ‘먹이망 하향 어업(fishing down foodweb)’을 보여주는 모식적 그림

김수암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

중국해양대학교 객좌교수

미국 스미스소니언 과학교육센터 과학자 홍보대사 (Scientist Ambass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