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NE – 해양 IN

이미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온
극지의 바다

책상에 앉아 지구본을 뱅뱅 돌리다 보면, 지금 내 위치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내가 부산에 있다면, 지구 정반대 쪽인 남미 우루과이 동쪽 해상인 남대서양 어디가 될 것이지만,
지리적 개념을 떠나 심정적으로 가장 가기 어려운 먼 곳이라고 느끼는 장소는
아마도 지구 양 극단에 있는 남극과 북극 지역이리라.

해양 IN

글.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김수암

먼 바다, 북극해와 남극해

책상에 앉아 지구본을 뱅뱅 돌리다 보면, 지금 내 위치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내가 부산에 있다면, 지구 정반대 쪽인 남미 우루과이 동쪽 해상인 남대서양 어디가 될 것이지만, 지리적 개념을 떠나 심정적으로 가장 가기 어려운 먼 곳이라고 느끼는 장소는 아마도 지구 양 극단에 있는 남극과 북극 지역이리라. 극지는 남극대륙과 그 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남극해, 그리고 시베리아와 북미 북단의 툰드라 지대와 그들에 의해 둘러싸인 북극해를 일컫는다. 대체로 일 년의 반은 어둠에 갇히고, 나머지 반은 낮만 계속되는 곳. 바람과 추위가 극심하여 바닷물도 얼어버리고, 사람의 주거조차도 극히 제한되는 곳. 하지만, 극지환경이 아무리 냉혹하다고 할지라도 극지 풍경 그 자체는 아름다움의 정수이다. 바다에 떠서 신비로운 옥색 그림자를 뿜어내는 빙산과 해빙, 하늘 전체를 현란하게 수놓는 오로라, 무리 지어 빠르게 헤엄치는 펭귄, 슬로모션으로 거대한 자태를 뽐내는 고래 등의 자연 풍광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과 더불어 모험과 동경이라는 이중적 잣대로 극지를 대하게 된다.
남극과 북극은 인간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과학자나 탐험가의 세계라고만 여겨왔다. 그러나 조금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이제 극지는 더 이상 우리 삶과 무관한 곳이 아니고 이미 우리의 실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수산물도 극지 바다 혹은 극지 인근 해역에서 포획되는 것이 많고, 극지에서의 기상변화는 우리나라의 사계절 날씨에 즉각 영향을 미친다. 또한, 국제 무역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북극 항로 개척은 경제적 실리를 채워주는 현실적 과제이다. 특히, 극지 바다의 경우, 우리와 깊이 연관된 문제가 많으므로, 국제적으로 떠오르는 사안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순발력 있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면 극지의 바다를 왜 우리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바다와 극지에 대한 꾸준한 관심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새 정권이 들어와 북극에 관한 관심이 특히 높아지고 있다.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하여 바다와 북극에 관한 업무를 해양 수도 부산에서 치밀하게 기획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계획이므로 앞으로의 바다 관련 활동은 우리의 삶에 더욱 밀착되는 국가의 주요 업무가 될 것이다. 과거의 기록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어업 및 운송 활동 이외에도 바다관련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었다. 멀리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로 엿볼 수 있는 선사시대의 포경 활동, 청해진을 거점으로 하는 장보고의 국제 해상 무역,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바다의 특성을 이용한 해전 전략, 정약전의 자산어보 집필 등 하나하나가 문화사적, 국제교역, 군사적, 과학적 관점에서 탁월한 업적이자 활동이었다. 이러한 업적은 우연히 즉흥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바다관련 활동 DNA가 우리의 근성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 증폭되고 있는 극지에 대한 관심도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는 바다관련 유전인자의 발현이라고 본다.
극지 바다의 경우, 바로 앞 세대의 우리 선배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이해와 관심이 있었다(그림 1). 가령, 일제 강점기 시기의 국어학자 이상춘은 1914년 ‘서해풍파’라는 소설을 출간하였는데, 그 안에 당시의 최첨단 지구과학 이론인 대륙이동설을 소개하였고, 대양 항해, 남극 탐험과 같은 진취적 내용을 포함하였다. 아문젠의 남극점 탐험 성공 연도가 1911년인 것을 생각하면, 1세기 전의 지식인들이 국제 동향을 거의 실시간 수준으로 빠르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얀 벨츨이라는 체코인은 1930년에 ‘황금의 땅, 북극에서 산 30년’를 출간했는데, 그 책에서 자기가 고용한 조선 여인을 기술하고 있다. 그는 북극해의 여름에 정어리를 어획하는 원양어선단의 일원으로 와서 일하다가 돌아가지 못한 채 북극해 주변의 섬에 눌러 살게 된 조선인 여자와의 인연을 얘기했다. 수산해양학을 공부해 온 본인은 북극 연안에서의 청어, 정어리의 계절적 출현, 원양어업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던 20세기 초반의 북극해 어업활동에 대한 기록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림 1 우리나라 선조들의 극지에 대한 관심과 활동을 보여주는 20세기 초반의 문헌 표지. (좌) 서해 풍파, (우) 북극에서 산 30년

극지 바다의 중요성과 우리나라의 극지 활동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선진국의 지식인들은 극지를 인류 전체에게 선사된 유산으로 보았다. 따라서, 오로지 전 인류를 위한 평화적 이용, 과학적 활동에만 극지를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하였고, 국제조약을 체결하여 무분별한 극지 활동을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미래 세대를 위한 극지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인식은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당연한, 그리고 꼭 필요한 개념이지만,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주의 앞에서는 그 정당성이 무색해지기도 한다. 특히 200여 년 전까지는 존재조차 몰랐던 남극의 경우, 남극해에 풍요롭게 서식하던 물개, 고래, 어류 등의 해양생물을 경쟁적으로 포획하여 거의 씨를 말리는 수준까지 개체수를 떨어뜨렸다. 주인이 없는 남극해 생물자원에 대한 관리는 결국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를 설립하면서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며 국제협약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경각시켰다.
지구가 온난화됨에 따라 북극해의 중요성도 더욱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북극해의 반은 빛이 없는 계절이므로 얼음에 덮여있지만, 나머지 기간에는 따뜻해진 바닷물 때문에 북극해의 해빙이 연안지역부터 녹기 시작하는데, 녹는 정도에 따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가 개척될 수 있다. 이러한 북극 항로 혹은 북극횡단 항로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거쳐 유럽으로 가던 기존의 항로와 비교하여 40% 이상의 거리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또한, 북극해 주변에 있던 어류들은 서식처를 북극해로 확장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그림 2), 어업자들은 얼음이 사라질 북극해에서 어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큰 관심이 있다. 이처럼 북극에 관한 여러 이슈는 우리 경제, 먹거리 등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 이득이기도 하므로 북극이사회 옵서버국인 우리나라는 북극의 과학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극지 바다의 미래 가치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 우리나라 정부는 반세기 전인 1978년에 남극해에 서식하는 남극크릴을 어획하기 위하여 시험 조업을 시작하였고, 이 사업을 1980년대까지 7차례나 이어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의 정회원국이 되어 남극 활동 국가로 국제무대에 데뷔하였다. 또한, 1988년 남극에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하면서 남극조약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남극 과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21세기 들어와서는 극지연구소 개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 북극다산기지, 남극대륙에 제2기지인 장보고기지를 건설하였고, 쇄빙선을 건조하여 극지해 연구와 보급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극지 바다에 대한 경험을 활발하게 축적해 왔다. 그 결과,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짧은 시간 내에 명실상부한 극지 활동 중추 국가 중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
언급한 것처럼 극지 바다를 잘 활용하면, 우리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남극 활동을 처음 하던 40여 년 전, 우리 정부도 남극해의 수산자원, 향후 개발 가능성이 있는 광물자원, 극지환경을 극복하는 생물 특성을 이용한 생물공학 기법 등의 경제적 관점에 주로 관심을 보였었다. 그러나 극지 이슈는 기후, 자원, 환경, 관광, 우주 개발, 국제관계, 국방, 민속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으므로, 어느 하나 우리의 미래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없다. 극지를 활용한 사회경제적 이득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국제규범의 틀 안에서 지구환경의 변화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의 일원으로 진입하면서 부과되는 선도자에 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책임의식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구와 인류 전체에 부과되는 환경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과학적 난제들을 선도적으로 풀어나가면서 지구환경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서 기여해야 한다.

그림 2 지구온난화에 따른 아북극권 어류의 북극해 침투 예상 모식도. 옅은 색깔은 대서양 볼락(Sebastes mentella)의 현재 분포이고, 짙은 색깔은 향후의 서식 가능 해역이다.

새로운 역할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여러 위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미래 모습을 예측하기 어렵다. 인류가 지속발전 가능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지, 기후변화에 의하여 지구생태계가 멸종 수순을 밟을지, 문명 발달의 역효과로 핵전쟁이나 AI에 의한 문명 파괴가 일어날지 전혀 예측하기 어렵다. 극지 연구가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는 결정적인 돌파구는 물론 아니지만, 극지 연구를 통하여 기후위기에 대한 경감 효과는 최소한 가능할 것이다. 지금도 남극의 빙하가 녹으며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고, 북극해의 대기 변화가 한반도의 기후 패턴에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극지는 그리고 극지의 바다는 이미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렇기에 극지 바다 연구를 단순히 ‘먼 바다’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바다’의 현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극지 문제를 포함한 지구환경에 대한 이해는 정부와 과학자만의 일이 아니라 교육자를 비롯한 시민 모두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소비 습관, 과학 활동, 에너지 정책, 기후 대응이 결국 교육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융합하는 새로운 교육 체제를 구축하여 젊은 세대를 교육하고 훈련함으로써 미래 지구와 인류 사회가 지속가능발전을 성취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김 수 암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
중국해양대학교 객좌교수
미국 스미스소니언협회 과학자 홍보대사(Scientist Ambass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