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탑 내부
MARINE
Marine and people
해양생물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고 보존을 위한 표본 연구에 힘을 쏟는
한국해양동물연구소 정혜경 대표
한때 바닷속 세상은 수 많은 해양생물들이 자유로이 헤엄치며 생을 영위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하나 둘 씩 사라지기 시작한 해양생물들은 해양보호생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으며, 인류의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인류에 의해 사라지고 인류에 의해 보호받는 이 아이러니함 속에서 한국해양동물연구소와 제주해양동물박물관을 운영하는 정혜경 대표는 인류의 기억 속에서 잊힐 수 있는 해양생물들을 표본화해 존재의 가치를 각인시키려 한다. 무한한 바닷속 세상을 수집해 오늘이라는 역사 위에 기록해 나가는 정혜경 대표를 만나보도록 하자.
Q1 박물관에 들어서면 “바다는 살아있는 무한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는데요. 바다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과 신념 그리고 바다에 사는 해양생물을 알리고 보전하기 위해 연구소와 박물관을 설립하게 된 연유가 궁금합니다.
바다는 지구의 10분의 7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닷속 세상은 무한해요. 누군가에게는 주요한 식량자원이 되어주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문학적 혹은 예술적인 영감을 주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고급 레저 놀이문화의 제공처가 되어주기도 하죠. 바다와 인간의 관계는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바다와 인류는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인 거죠.
특히 저에게는 더욱 그래요. 해양생물을 통해 인생을 배우게 됐거든요. 92년 처음으로 서울 그랜드백화점에서 ‘해양생물 특별전’ 을 시작으로 물고기 표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확인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자본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죠. 당시 지방자치단체나 기관의 박물관 건립 제안도 있었으나, 우리만의 박물관을 가꾸어 나가고자 하는 마음에 직접 기획하여 개관하게 되었어요.
Q2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도 대표님이 제작하신 해양생물표본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떠한 표본을 제작하셨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표본은 무엇인가요?
자원관에 전시된 어류나 해양생물과 관련된 표본 중 70% 가까이를 저희 연구원에서 제작한 것 같아요. 이 중 가장 작업하기 힘들었던 표본은 참고래였어요. 14.5m에 달하는 대형 골격인데다가 땅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던 아이라 지방을 제거하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어요.
연구소가 있는 가평에서 작업을 시작하고 1년 반 가까운 작업 끝에 골격을 완성했는데, 자원관으로 운반을 하려고 하니 너무 커서 대책이 없더라고요. 결국 4등분해서 이동한 뒤에 현장에서 재조립 했어요. 생각해 보면 참 난리도 아니었어요.(웃음) 그래서 그런지 자원관에 들어가 있는 생물 표본 중 참고래 표본에 가장 마음이 가요. 동고동락을 오래 해서 그럴까나요?
Q3 현재 작업 중인 표본은 무엇인가요?.
돌묵상어라고 아시나요? 고래상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상어인데요. 최대 15m까지 자란다고 하는데, 그 크기가 상상이 가시나요? 하지만, 돌묵상어는 생김새와 달리 엄청 순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먹이도 주로 작은 갑각류나 플랑크톤 등을 섭취한답니다.
하지만, 현대 돌묵상어는 무분별한 포획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해있어요. IUCN 적색목록 ‘위기’에 처해있는 종이예요. 그런데 작년 동해안 쪽에서 돌묵상어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리고 국립해양생물자원에서 돌묵상어를 기증을 받게 됐고요. 그 돌묵상어 시료를 작년부터 표본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아주 귀하디 귀한 시료라고 할 수 있죠. 아직 국내에는 돌묵상어 표본이 전무한 상황이거든요. 해양보호생물이다 보니까 함부로 취급할 수도 없고요.
그 돌묵상어를 자원관에서 받은 뒤에 표본으로 작업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여름철에 잡힌 거라 피부가 망가질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작업하느라 긴장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거의 작업이 완료돼서 올해 말쯤이면 완성될 것 같아요.
Q4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색채에 반해 이를 연구하다가 영구보존하기 위해 표본 제작 및 어류 박제 발명특허까지 취득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특허를 취득하게 되었나요?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특허를 내는 과정이 마냥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조류나 포유류와 달리 어류는 성형방법이 다르고 까다롭거든요. 스승님이 오랫동안 발명한 기술적인 부분을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이 필요했죠. 꽤 오랜 시간을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1996년 ‘어류박제 성형 방법 및 박제품’에 대한 특허를 낼 수 있었습니다. 어류표본은 섬세하고 테크닉이 필요하다 보니, 현재는 기술적으로 인정받아 우리나라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작품을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Q5 표본 제작을 위한 생물 수집과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확보하기 어려운 생물도 많을 것 같은데요.
표본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선도와 외형의 손상이 없는 시료를 구해야 하므로 직접 바닷가에 가서 채집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동, 서, 남해안의 어장과 어항을 다니며 배에서 올라오는 물고기들을 관찰하여 새로운 어종을 찾아다니는 거죠. 오랜 기간 채집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어부분들과도 유대관계가 이루어졌어요. 이제는 새로운 대형 어류나 귀한 해양 생물이 나오면 어부분들이 먼저 연락을 주시기도 해요. 그 외에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 해양보호생물의 경우 환경부, 문화재청, 해양수산부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허가 과정을 거친 후 전시 표본화가 이루어집니다. 표본 제작을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한데요. 매번 배려해주시고, 협조해주셔서 참 감사해요.
Q6 전시품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접근 금지 없는’ 전시장을 추구하며, 다양한 체험교육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전시장은 관람만 가능한데, 왜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되었나요?
제주도에는 이미 많은 테마 박물관이 있잖아요. 우리만의 특별한 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지루하고 딱딱한 박물관이 아닌 즐겁고 편안한 박물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죠.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닌 직접 만지고 체험해볼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했어요. 40여 년간 축적된 노하우와 전문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죠. 그 결과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직접 표본들을 만져보며 굉장히 신기해하곤 해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저희 박물관이 바다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과 해양생물의 공존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전문 박물관이 되기를 바랍니다.
Q7 바닷속은 아직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 많고, 아직도 신종 해양생물의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래 인류에게 있어서는 자원의 보고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해양자원의 가치를 어떠한 프로그램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체험케 하나요?
어린이들이 관람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양생물의 소중함을 알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크게 여섯 가지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상어 스탬프 찍기, 호일에 해양생물 그리기, 문제풀이 미션지, 색종이 접기, 업싸이클링 야외놀이터 등입니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해양생물을 자세히 관찰한다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해양생물을 직접 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양생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게 돼요. 단순히 박물관에서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일상에서도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거죠. 그래야 바다가건강히 살아갈 수 있고, 해양생물이 안전하게 헤엄칠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Q8 지금까지 작업했던 수많은 표본들 중 가장 애정하는 표본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만 꼽기 쉽지 않은데요. 특히 철갑상어나 고래상어 같은 지금은 채집이 어려운 종들의 표본을 좋아해요. 토종 철갑상어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더이상 채집되지 않아 거의 멸종됐다고들 말씀하시거든요. 다행히 저희는 90년대 초반부터 대형 철갑상어를 비롯하여 소형종의 철갑상어들을 채집하였기에, 표본을 만들 수 있었어요. 고래상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현재는 해양보호생물로 채집이 금지되었지만, 저희는 지정되기 전에 채집하여 표본을 만들었기에 점차 사라져가는 고래상어라는 존재를 표본으로라도 알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Q9 표본들은 역사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는데요. 예전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해양생물들 혹은 지금은 존재하지만 사라져가는 해양생물들에 대해 설명 부탁드려요.
채집을 다니다 보면, 미기록종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들은 저희가 전시하기 보단, 잘 보관해서 기록해두려 해요. 희귀 어종의 경우 생물학적으로 멸종이 되면 표본으로나마 후세에 알리게 되겠지만, 멸종되기 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바닷속 해양생물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Q10 마지막으로 향후 추진하고자 하는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최근 기후변화나 환경오염 등으로 생물학적으로 멸종되어 가는 종들이 많아요. 그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상업적으로 멸종되어 가는 종들도 있죠. 대표적으로 명태인데요. 명태는 동해안에서 가장 흔한 어류 중 하나였지만, 현재는 남획과 지구 온난화로 인해 찾아보기 어려워졌어요. 이럴 때일수록 해양생물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표본화하여 보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담수 고유종을 비롯하여 멸종위기종 등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