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탑 내부
MARINE
Marine and people
바다를 품은 글을 기록하는
해양문학가 이윤길 선장
생의 절반 이상을 일렁이는 바다 위에서 살아간 한 사내가 있다. 육지의 평온한 삶보다 굴곡진 파고와의 상생에 익숙한 그는 바다 위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선장’이자 ‘해양문학가’, 그리고 ‘국제과학옵서버’라는 다양한 타이틀을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해 ‘글의 바다’와 ‘생의 바다’를 활자 안에 응축해 담은 이윤길. 그의 생에 각인된 바다와의 대화를 들어보도록 하자.

Q1. 1978년부터 배를 타기 시작한 이후 40여 년간 전 세계 바닷길을 누비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를 잡아 올리다가 글 바다를 누비며 해양문학 작품까지 건져 올리고 계신다고 하던데..그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 번 바다로 나가면 기본 2~3개월은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생활하는데, 그 광활한 자연을 등지고 다시 육지로 돌아오면 이상스레 낯설더라고요. 하루하루의 삶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만 겉도는 것 같았어요. 그러던 추운 겨울날이었어요.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아스팔트 길이 출렁이면서 나를 잡아당기더군요. 그렇게 차디찬 바닥에 고꾸라졌는데, 새빨간 피가 바닥에 흥건히 고이는 게 보였어요.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가는 모양이 그제야 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겁니다. ‘살아가는 방법’ 을 찾기 위해 고민을 참 오래 했어요. 그러다가 바다에서 보냈던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글을 써보기 시작했고, 원양산업노조에서 주최한 축제에 그간 썼던 글을 제출하여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겁니다.
Q2. 2005년부터 시와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하고, 한국해양문학상 시 부문 대상,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수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바다는 정복의 대상이 아닌 상생의 현장이라고 말씀하시며 생의 절반 이상을 바다에서 생활하셨는데요. 해양문학가인 작가님에게 바다는 어떤 곳이었나요? 그리고 상생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제 고향은 강원도 주문진입니다. 바다와 인접한 지역이라 어려서부터 바다를 보고 성장했어요. 마을 사람들도 생계의 전반을 바다에 의지했고, 대화 내용과 삶의 중심 역시 바다였습니다. 즉, 저에게 바다는 삶의 기반인 동시에 친구였고, 소통의 대상이었어요. “바다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상생의 현장”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바다는 우리의 삶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바다를 활용하고, 바다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상생을 위한 지속 가능한 어업과 환경 보호를 중시하며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인간과 바다가 조화롭게 공존해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찾아 나아가 주세요.
Q3. 대상 수상을 받은 시와 소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내용은 어떠한지 작품 소개를 부탁드려요.
첫 번째로는 한국해양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진화하지 않은 물고기 한 마리’입니다.
이 시는 살아있는 화석 물고기라고도 불리는 실러캔스(Silurichthys)라는 원양어류를 의인화하여 쓴 작품으로 ‘처음 가진 마음이 끝까지 간다.’라는 의미를 담아 썼습니다.
두 번째로는 부산일보에서 신춘문화와 함께 매년 주최하는 해양문학상에서 소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남극해’입니다. 이 소설은 사방이 얼음으로 둘러싸인 남극해를 무대로 둥둥 떠다니는 빙산을 피해가며 ‘남극이빨고기’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선원들의 이야기입니다. ‘남극이빨고기’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거는 욕망의 몸부림 속에서 인간 군상과 대자연과의 대치는 과연 누구의 승리로 끝났을까요?(웃음) 저 역시 원양어선을 타고 남극해를 가본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저의 경험이 녹아 있기도 하고요. 선원들에게는 지옥의 문턱이라 불리는 ‘남극해’. 그럼에도 최고급 어종을 잡기 위해 모험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인간들. 인간은 도전을 멈출 수 없고. 바다는 그러한 인간을 막을 수 없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세 번째로는 한국해양재단에서 주최하는 해양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남태평양’입니다
바다를 동경하던 주인공이 홀로 요트를 타고 남태평양을 항해하는 여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맞닥뜨리는 사건 사고들과 사랑에 대한 고뇌를 그린 작품입니다. 해양문학적인 지평을 넓히고자 집필한 작품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해양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됐습니다.


Q4. 국내에 몇 되지 않는 국제과학옵서버로서 활동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해양생태계 보존을 위해 국제기구나 국가의 권한대행으로 원양어선에 승선해 바다 생태계와 생물학적 자료들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을 한다고 들었는데요. 국제과학옵서버는 무엇이며 어떤 활동을 하는지 보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국제과학옵서버는 해양 생태계 보존을 위해 국제기구나 국가의 권한 대행으로 원양어선에 승선하여 바다 생태계와 생물학적 자료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국제과학옵서버는 국제기구에서 정한 섹터에서 생산되는 물고기의 생물학적 데이터를 추적하고, 해당 물고기의 지속가능성과 포획 수량 등을 파악합니다. 또한, 원양어선이 국제기구에서 정한 규칙을 준수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허가 없이 조합하는 불법 활동을 추적하고 보고하여 바다 생태계 보전과 지속 가능한 어업 관리를 위한 일을 합니다.
Q5. 바다가 점점 오염돼 가며 해양 생물들이 폐플라스틱이나 비닐에 의해 폐사하고 있습니다. 인근 해역에서도 생활 쓰레기들이 흔히 목격되곤 하는데요. 먼 바다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먼바다도 해양 쓰레기로 인해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육지에서 투기 된 쓰레기들이 2~3년 동안 떠다니며 바다 중심까지 떠내려온 사례도 있었습니다. 해양 쓰레기 문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합니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비닐, 플라스틱을 먹는 물고기들 등 해양 생물들의 건강과 생존에 적신호가 켜지며 바다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모든 생태계는 순환합니다. 그리고 안정된 순환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고요. 지금은 과연 어떠한 상태일까요? 우리 인간도 안전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 역시 생태계의 순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더 심각해지기 전에 해양 오염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경각하고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행동의 변화가 촉구돼야 합니다. 해양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 위에 국제적인 협력이 수반돼야 미래 지구 환경은 변화될 것입니다.
Q6. 바다라는 자연은 때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때로는 성난 파도를 일렁이며 자연의 힘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어업 현장에서 위험할 때도 굉장히 많았을 거라 예상하는데요. 그럼에도 계속 바다로 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육지보다는 바다의 삶이 훨씬 더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특별하고 독특한 어종들도 관찰할 수 있고, 때로는 학계에 보고조차 되지 않은 신종 어류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설레고 즐거워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바다에 나가면 편안합니다. 바다의 순수한 모습과 시간을 공유할 수 있거든요. 이러한 시간들이 쌓이다 보면 제 안에 숨어있던 ‘가치(價値)’가 얼굴을 들이밀고 자신을 봐달라고 해요. 보살펴 달라고 성장시켜달라고 말이죠.


Q7. 시인, 소설가, 선장, 국제과학옵서버 등 직업이 너무 많으신데요. 혹시 이 외에 또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을까요?
지금은 해양문학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논문을 마무리한 후에는 바다를 무대로 살아가는 사람 내음 나는 이야기 그리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바다 이야기를 창작하려고 합니다. 문학 외적인 부분에서는 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지속 가능한 해양생태계 조성을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바다를 삶의 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Q8. 전 세계 바다를 돌아보셨을 텐데요. 우리나라의 바다와 다른 나라의 바다가 다른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방문한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는 친환경적인 재료 즉 자연에 있는 재료를 활용해서 방파제를 만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주로 시멘트로 방파제를 만들어 해안가를 덮습니다. 이로 인해 백화현상 등 바다 환경이 손상되어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방파제를 구축하고, 해안 보호를 위한 다양한 생태학적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Q9. 마지막으로 바다 환경(생태계) 보전을 위해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다에 버린 쓰레기는 결국 우리 입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다 환경 보존을 위해 쓰레기를 줄이고 친환경 대체용품 사용을 늘리는 등 우리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구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자연은 세계와 세계를 연결합니다. 그러기에 인류 모두가 하나뿐인 지구를 사랑하고 자연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해 손을 맞잡고 힘을 합쳐야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