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탑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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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생물자원관·해양수산전시관
네트워크 공동 특별전 개최
바다의 시그널, 등대

. 편집부

바다로 떠난 이들을 육지로 불러들이는 한 줄기의 빛, 드디어 집에 당도했음을 알리는 따뜻한 빛줄기의 신호. 육지의 끝과 바다의 초입에 서서 등대는 언제나 바닷사람들의 안내자가 되어 행로를 밝힌다. 이러한 등대의 매력에 흠뻑 빠져 그 아름다움을 화려한 색으로 물들인 프랑스 일러스트 작가 라민 드브레스트(Ramin Debrest)가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및 해양수산전시관(네트워크*)과 손을 맞잡고 7월 5일부터 8월 31일까지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씨큐리움에서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24점의 작품 속에는 부산에 위치한 오륙도 등대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고 반가울 따름이다. 해양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특별전시 바다의 시그널, 등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해양수산전시관 네트워크는 2015년에 출범한 이후, 공동 전시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는 전국의 19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바다의 활동을 지켜보는 등대

20대까지 해양인류학도였던 작가 라민은 대학을 졸업한 뒤 파리 국립장식예술학교에 들어가 바다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다. 그는 바다만 그리지는 않았다. 주제는 바다였지만, 그가 중점적으로 눈여겨본 것은 등대였다. “등대를 중심으로 바다의 모든 활동이 일어나요.”라고 말하며 등대를 배경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리고,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의 모습을 그리는 등 작가 라민의 등대 그림은 프랑스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등대

작가 라민의 그림에 오로지 등대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등대가 바라보는 인간의 삶과, 바다의 삶 속에 어우러진 인간의 생활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아로새긴 등대의 생이 한 장 한 장의 화폭에 옮겨져 있다.
1692년부터 운영돼 400여 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킨 프랑스 생마티외 등대(Phare de Saint-Mathieu)에는 정어리떼와 바닷새를 등장시켜 나무처럼 올곧은 등대에 역동성을 부여했으며, 프랑스 남서부 대서양에 위치한 마을인 비아리츠에 1834년 완공된 ‘비아리츠의 등대(Phare de Biarritz)’는 고래를 볼 수 있다는 마을의 특성을 살려 등대와 고래를 한 장면에 담아냈다.
이 외에도 등대 축제(Festival des phares)에서는 다섯 등대와 등대산이 마치 춤을 추듯 흥겨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배 위에 올라타 함께 항해하는 그림의 ‘등대선(Bateau-phare)’에서는 육지를 떠난 등대가 배를 타고 바다라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 ‘등대지기는 배모형 제작자(Le maquettiste)’에서는 등대지기가 배의 모형을 제작한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녹아들어 톡톡 튀는 감성을 느낄 수 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부산의 등대(Lighthouse in Busan)’

라민의 여럿 작품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띠는 작품은 바로 우리나라 부산의 오륙도 등대를 그린 ‘부산의 등대(Lighthouse in Busan)’이다. 1937년 11월 최초로 점등된 오륙도의 등대는 밭섬 위에 세워져 있다. 파아란 바다와 회색빛의 밭섬 그리고 그 위에 우뚝 솟은 새하얀 등대의 아름다움에 감명 받은 작가 라민은 등대의 모습 그대로를 담아대는 동시에 빨간 등대를 옆에 배치해 색감의 조화로움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등대 한 켠에서 조용히 펄럭이는 태극기가 보이는데, 우리나라 태극기의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가 틀린 부분 없이 세세히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걸어 나가는 일이라고 한다. 뱃길을 항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밤바다의 어둠을 파악하고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나가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등대가 알려주는 빛의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어둠과 빛 그리고 바다와 사람. 결국은 모두 길을 찾는 여정 속 함께 하는 이들이 아닐까 한다. 작가 라민의 작품을 보면 등대라는 매개체를 통해 생의 어둠과 밝음, 가벼움과 무거움, 그리고 깊고 얕음이 표현되어 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해양수산전시관의 네트워크 공동 특별전인 「바다의 시그널, 등대」를 관람하며 내가 걷고 있는 행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