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탑 내부
MARINE
Marine and people
그저 좋아서 마냥 좋아서
바다를 그려낸 물고기 세밀화가 조광현
“좋은데 이유 있나요?” 물고기 세밀화를 그리게 된 이유를 묻자마자 조광현 화가는 저리 답했다. 좋아서 연구했고, 좋아서 그려냈고, 좋아서 더 깊이 탐험했다고 한다. 물길 닿는 곳, 발길 닿는 곳이 그의 길이었고 그의 화폭이었고 그의 즐거움이었다. 이리 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당연한 삶이거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쫓는 삶이 아닌 삶을 위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왜 우리는 언젠가부터 안위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라고 말이다. 한 화가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갯벌을 거닐고, 바닷속을 헤엄치고, 습지를 파헤치며 2,600여 점의 해양생물을 그려왔다. 마음이 ‘좋다’ 말하니, 그리 살아왔다 한다. 이보다 더 완벽한 답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 같다.



Q1. 전시실 입구에 쓰인 ‘물고기는 곧 물이다’라는 말에 참 많이 공감됐습니다. 물고기는 몸으로 물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변화해가며 현재의 그 모습을 갖게 된 것이겠죠. 그래서 화가님 말씀처럼 비늘과 지느러미, 가시 하나하나에 바닷물의 속성이 배어있기에 같은 모습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세밀화 도감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수백 장의 사진과 논문, 기록물 등 공부도 엄청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그 기록의 과정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물고기를 설명해주세요.
제가 한국의 민물고기, 바닷물고기 다 통틀어서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로 책을 제작했어요. 바닷물고기 528종, 민물고기 233종이니까 다 합하면 거의 800종 정도 되는데, 이 그림들로 전시도 두 번 했어요. 그런데, 이 작업을 하는데 얼마나 걸린 줄 아세요? 15년이예요. 15년. 물고기 세밀화 그림을 그릴 때 종 목록도 학자랑 협의해서 어떤 종을 다룰 것인가 리스트를 작성해야 하고, 작성된 리스트를 바탕으로 물고기 관련 자료를 모으는데 희귀종도 많아서 그릴 때 참 많이 힘들었어요. 어떤 물고기는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5년이나 걸리기도 했어요.
보통은 직접 바닷속에 다이빙해 들어가서 수중 촬영으로 찍고 자료를 모으거나, 전문기관에 자료를 요청하기도 하는데, 논문이나 도감과 같은 자료는 세계 곳곳에 있어서 주변 루트를 통해서 구하고 수집하고는 했어요. 그리고 논문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그림을 재구성하기 시작해요. 그냥 보고 베끼는 게 아니라 여러 정보를 모아서 다시 재구성하는 거예요. 등 지느러미 줄기 수는 몇 개고, 눈의 위치와 모양, 비늘의 열 등 자료를 일일이 분석하고 연구해서 모습을 그려내는 거예요. 재구축이라고 할 수 있죠.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고기는 금방 그려요. 고등어나 꽁치같은 건 시장에 가서도 볼 수 있으니까요. 직접 수족관을 설치해서 키우면서 관찰도 했고요. 뭐. 별 짓 다했죠.
그런데, 먼 바다 혹은 심해에 살거나 찾기 힘든 희귀종들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동료 다이버들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고, 어선에 올라타서 갓 잡아 올린 물고기들 관찰하고 그랬어요. 어민들이 탐탁지 않아 했어요. 자기네들은 일하고 있는데 나는 예술한답시고 옆에서 귀찮게 물고기 만지작거리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런 노력들이 있었으니까 도감으로는 최초로 대상을 수상한 거 아니겠어요?
Q2. 가장 애착이 가는 물고기가 있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전부 내 새끼들이기 때문에 전부 다 기억에 남아 있어요. 사연들도 많고요.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건 고등어예요. 고등어가 국민 생선이기도 하고 흔하게 볼 수 있다 보니까 다들 별 거 아닌 물고기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얘가 살아 움직일때는 얼마나 신비롭고 휘황찬란한지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 고등어 지느러미만 봐도 위치, 기능, 역할에 따라서 각각의 모양이 달라져요. 예를 들면, 등지느러미 뒤의 토막지느러미는 토막토막 잘려있는데 그래서 최대한의 운동 능력을 낼 수 있어요. 고등어 종류가 물속에서 제일 빨라요. 참치나 다랑어 새치 이런 애들은 거의 시속 100km로 헤엄쳐 나가요. 그래서 제가 사람들을 만나면 늘 하는 얘기가 물고기 하나하나마다 얼마나 신기하고 신비로운지 설명을 해줘요. 아름다운 생명체로서 귀하게 여기며 먹으라고 말이죠. 그렇게 말이 전해지다 보면 남획도 줄고 낚시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어요. 시시한 생물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모든 생물은 특별하고 존중받아야 해요.

Q3. 2012년 제주 문섬 일대에서 한국 최초로 수중 페인팅 작업을 진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죠? 대체 어떤 재료들로 어떠한 방식을 통해 그림을 완성하셨나요? 그리고 물속에서 그림을 그리고자 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얘기해주세요.
제가중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시각 훈련 삼아 야외 스케치를 많이 다니곤 했어요. 사진을 보면서 실내에 앉아서 그리면 감동도 없고 훈련도 안 돼요.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온갖 것이 다 섞여 있어서 그리기는 어렵지만, 생생한 표현 능력이 증진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꽃을 그려도 그 주변에 잡초가 무성히 섞여 있고, 바람이 불면 식물들의 생동감이 또 달라져요. 그래서 옛날부터 화가들이 현장 작업을 많이 다녔어요.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감각을 깨우려면 현장만 한 게 없으니까요. 그런데 현장 작업을 다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바다에 들어가서 바닷속 세상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라고 말이죠. 제가 화가이기도 하지만, 스쿠버 다이버이기도 하거든요. 바닷속에 들어가서 보는 세상은 많이 달라요. 그 조용한 세상 속에 사는 해양생물들은 각자의 속도대로 움직이고 살아가며 하나의 세상을 완성해 나가거든요. 그 조화로움에서 감동을 많이 느껴요. 조사를 해보니까 외국에서는 수중 페인팅 작업이 간간이 이루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도전해 보기로 했죠. 그리고 2012년 작은 캔버스 몇개랑 화구들을 들고 제주 바다에 뛰어들었어요.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가 캔버스를 고정하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바닷물의 강한 부력 때문에 그림을 그리다가 붓을 놓치면 막 날아가고, 날아가면 헤엄쳐서 쫓아가서 다시 가지고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렇게 1차로 그림을 그린 뒤에 화실로 가져와서 완성시켰어요. 그렇게 몇 번의 작업을 하다 보니까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붓도 날아가지 않게 잘 묶어놓고 캔버스를 고정할 금속 이젤도 가지고 내려가고 점차 작업하기 수월해지더라고요.
그런데 한 날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쏠베감팽 한 마리가 쓰윽 다가오더라고요. 얘는 독 가시를 가지고 있어서 조심해야해요. 얘도 자기가 강한 걸 아는지 사람을 봐도 피하지를 않아요. 나도 어쩔 수 없이 페인팅을 중단하고 옆으로 피해 있었는데, 내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그림을 감상하더라고요. 안 믿겨지죠? 그런데 진짜 한참을 앉아서 그림을 보다가 갔어요. 신기하지 않아요?

Q4. 수중 페인팅 작업을 넘어 2016년에는 울진 침몰선에서 한국 최초로 수중 전시회까지 진행하셨더라고요. 바닷속에 전시된 그림들을 보니 너무 신비로웠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시고 과감히 실행하시게 됐나요? 전시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그 과정 속에서 기억에 남는 점은 없었을까요?
2016년 경이었을 거예요. 친분이 있던 독립영화 감독이 서울 환경 영화제를 준비하던 중 도움을 구하더라고요, 당시 그 감독이 수중 세계와 세월호를 엮어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스토리도 좋고 감동적인데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고 임팩트 있는 장면을 촬영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거였죠. 물속에서 페인팅하는 장면을 담고 싶다고요. 그래서 합류를 했어요. 그렇게 회의 하면서 영화 스토리를 수정하는데, 번뜩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예요. “페인팅만 할 게 아니라 아예 물속에서 전시를 하자!”라고 제안을 했죠.
그렇게 일주일 가량 수중 전시를 진행하고 그 사이에 촬영도 같이 병행했어요. 그런데 생각을 해봐요. 물 속에 있는 그림을 누가 관람하겠어요? 다이버나 해양생물들뿐이예요. 해파리가 유영하다가 그림을 쓱 보고 지나가고, 물고기가 헤엄치다가 멈춰서 그림을 감상하고 그랬어요. 그 신기한 장면을 포착해서 영화 속에서 담았고요. 수중 전시회는 외국에 사례가 있긴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진행된 거예요. 해양 생물과 같이 즐기는 전시회라고 할 수 있었죠.
Q5. 한계를 넘어서시며 도전을 이어오시더니 결국 일을 내셨더라고요. 2021년에는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으로 한국출판문화상과 롯데출판문화 대상을 수상 받으셨는데요. 바다와 물고기란 화가님께 어떤 의미이기에 그 오랜 시간동안 도전을 감행하실 수 있는 걸까요?
물고기를 그리는 건 곧 나한테는 바다를 그리는 것과 같아요. 바다가 구현된 생명체를 그리는거라고 할 수 있죠. 수십억 년 지구에 적응해서 진화해 온 생명체에 담긴 바다의 정수를 그리는 거예요. 나한테는 그런 의미에요. 그래서 물고기 한 마리를 그리면 “바다의 역사를 내가 다 농축해서 그렸다.”라고 생각을 하죠. 물고기 안에는 혈액부터 시작해서 헤엄치기 위한 감각기관, 시각기관 등 모든 기관에 바다의 속성이 녹아들어가 있어요. 몸 전체에 바다의 속성이 다 구현돼 있는거죠. 그래서 물고기는 곧 바다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제 개인전 제목에도 ‘물고기는 바다다.’라는 말을 사용했답니다.

Q6. 매 전시, 매 출간마다 생명과 생태를 주제로 작업을 해오셨습니다. 우리나라 해양 생명과 해양 생태에 대해 화가님의 생각을 말씀해주시겠어요?
맛에 대한 욕망이 커진게 그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예요. 수요를 맞추려면 어업은 당연히 산업화 가 진행될 수밖에 없고, 거대한 그물을 쳐 물고기를 싹 쓸어 잡는거죠. 그렇게 물고기 씨를 말리고 폐 그물은 바다로 버려지고 그러는거죠. 이러한 어업도 문제긴 하지만, 소규모로 진행되는 낚시 행위도 큰 문제예요. 바닷속에 들어가 보면 낚시꾼들이 버리는 바늘 천지예요. 어민들이 버리는 어구나 그물도 말도 못하고요. 거기에 걸려서 죽는 물고기도 엄청 많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아파요.
한 번은 도루묵 철이라 도루묵들이 우리나라 근해에 떼로 몰려와서 그물에다 알을 낳은 거예요. 그물이 얼핏 보면 해초같아 보이거든요. 그런데 어민들은 물고기가 중요하니까 알을 다 탁탁 털어내 버리더라고요. 내가 보기에는 집단학살처럼 보였어요.
이런거 외에도 여러 이유로 물고기들은 멸종되어 가고 있어요. 어떠한 어종이 어떠한 이유로 멸종되어가는 지는 통계로도 안 나와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작업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자연과 생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또한 우리나라 바다에 이런 물고기들이 살았다는 기록을 남기는 거죠.
Q7.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 예정인 작업이 있다면? 그리고 가장 마지막 목표로 두고 있는 작업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20년 가까이 진행해 왔던 갯벌, 해양생물, 물고기 세밀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제 본업인 회화작업(캔버스 유화)으로 돌아가려합니다. 바다에서 겪었던 수많은 경험을 녹여서 이미 회화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 시작이 수중 모자반 숲이고요. 거대한 캔버스 안에 20여 년간 눈에 담았던 바닷속 세상을 화폭 위에 옮겨 담을 거예요. 생이 다할 때 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