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탑 내부
MARINE
Marine and people
코엑스 최장의 여성 아쿠아리스트이자
해양생물의 대모(代母) 장유진 센터장
아쿠아리스트들은 대부분 해양생물들의 엄마, 아빠로 불린다.
생명이 가진 무게를 짊어지고 해양 생물들에게 온전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아쿠아리스트들의 하루는 그래서 여러 삶의 무게가 더해진 만큼 막중하고 간절하다.
오늘 만나볼 장유진 센터장은 코엑스 아쿠아리움 내의 모든 생물의 삶을 보전하기 위해 더 연구하고 끊임없이 공부해 나가며, 지식과 경험을 나누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어여쁜 내 새끼들’을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아쿠아리움을 누비는 장유진 센터장을 만나보도록 하자.


Q1. 수많은 직업들 속에서 아쿠아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당시 아버지가 해양수산연수원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컸고, 그랬기에 물고기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커지게 됐어요. 사실 아버지께서는 물고기 관련 연구원이 됐으면 하셨는데, 성향 상 앉아서 하는 일 보다는 직접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서 대학교 졸업 후 경상남도 밀양에 있는 통도환타지아에 입사해 산호, 해수어, 상어 등을 관리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선배의 권유로 코엑스에 지원을 하게 됐고, 2000년 5월 현재의 코엑스 아쿠아리움이 오픈하면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아쿠아리스트라는 용어 자체도 없었어요. 사육사라고 불렀었죠. 그런데, 아쿠아리움 오픈에 많은 도움을 준 영국의 전문가들이 아쿠아리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걸 보고 저희도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거죠.
Q2. 아쿠아리스트들은 남성의 비율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육아 문제 때문이겠죠. 그럼에도 여자 동기들 중 유일하게 혼자 남아 2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근속해 오셨다고 들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올해로 이제 입사 24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당시 여자 동기는 4명뿐이었어요. 그리고 그 외에는 다 남성분들이었고요. 현재는 동기 여자 분들은 모두 퇴사한 상태고, 저 혼자 남아있답니다. 최초 멤버이자 최후의 멤버가 되었네요.(웃음) 사실 직업 특성상 살아있는 생물을 관리하고 보전해야 하기 때문에 온 정신을 쏟을 수밖에 없어요. 키우는 생물이 아플 때는 자리를 비우지도 못하고 계속 함께 해야 하고요. 그러다보니 여자 아쿠아리스트들은 육아와 병행하기 힘들 수밖에 없답니다. 저 역시도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 이 일을 이어갈 당시 많이 힘들었고요. 애가 아파도 옆에 있어주지 못했어요. 열병이 난 아이가 스스로 체온을 재고 결과를 저한테 알리면 저는 대처법을 알려줄 수밖에 없었죠. 제가 관리하던 해수어들이 오히려 아이보다 제 손을 더 많이 탔다고 해야 맞을 거예요. 아이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도 그만둘 수 없었던 건 일에 대한 책임감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배 아파 낳은 제 아이도 소중하지만, 해수어들도 제 가슴에 품은 아이였기 때문에 떠날 수가 없었어요.
Q3. 현재는 총괄 관리 업무를 전담으로 하고 계시지만, 이는 그간의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죠. 현장에 계셨을 때는 어떠한 업무를 담당하셨었나요?
처음에는 해수어를 담당했었어요. 대형 전시 수조를 관리하고 수백 종의 해수어의 건강을 체크하고 치료하는 일을 했죠. 저희 아쿠아리움에는 수질 관리를 위해 수조 뒤편에 생명유지장치(Life Support System)라는 여과시스템이 장착돼 있어요. 수조보다 더 커요. 이 외에도 수질 관리를 위한 과학적인 장비들을 많이 갖추고 있는데, 그럼에도 아픈 애들이 생겨요. 그럴 때 최대한 빨리 질병을 캐치해야 아이들의 생존 확률이 높아진답니다. 보통 해수어들이 병에 노출됐을 때는 약을 먹이기도 하고 사이즈가 큰 해수어는 주사를 놓기도 해요. 약욕도 진행하고요. 수백여 종에 달하는 해수어들은 각각 치료법도 다르답니다. 물고기 마다 성질도 다르고 수질에 필요한 성분도 달라서 종류별로 일일이 다 공부하고 치료법을 찾아야 해요. 매일 공부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돌보기 어렵기 때문에 대학시절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런 노력을 이어가는 건 물고기와도 유대가 쌓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부분 잘 모르실 것 같은데, 물고기들도 사람을 알아본답니다. 얼굴을 인식하는 건 아니고요, 상대방의 행동패턴과 같은 행동을 기억해요. 그래서 제가 담당하는 수조에 다른 사람이 들어갔을 때는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들어가면 도망가지를 않아요. 아는 거죠. 그럴 때 뒤에서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는 했답니다. 기분이 좋아요.
Q4. 해양 생물을 관리하고 보살피는 등 오랜 시간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내오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힘들었던 순간들을 회고해 보신다면?
해수어랑 산호를 관리하다가 2008년에 펭귄이 들어왔어요. 훔볼트 펭귄이라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데리고 들어온 거였어요. 처음이라는 건.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경험치가 ZERO라는 거죠. 그래서 우선은 우리나라에서 펭귄을 사육하고 있는 곳은 다 돌았어요.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전국을 다 훑고 다닌 거죠. 한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님께서는 우스갯소리로 키워봤자 어차피 다 죽을 텐데 어떡하려고 그러냐. 다 죽으면 데리고 와라. 깨끗하게 부검해줄게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그 얘기를 듣고 오기가 더 생겼어요.
제대로 한 번 키워봐야겠다고 말이죠. 결국 국내에서는 정보를 얻지 못하고 일본까지 건너가서 사육 방법을 배우고 원문으로 된 전문서적을 독파하고, 외국 여러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기 위해 수시로 전화를 걸었어요. 귀찮아할 정도로 거의 매일 전화 한 것 같아요.(웃음)
아이들 수조 만들 때도 과학적으로 설계했어요. 물속에서 점프해서 착지할 수 있는 높이도 계산해서 조절했고요, 발바닥 질병에 많아서 애들이 걸어 다니는 바닥을 일일이 손으로 쓸고 다니면서 매끈하게 만들어줬어요. 뿐만 아니라 생체 리듬을 유지시켜줘야 하기 때문에 수온의 변화도 연중으로 관리하고, 호흡기 질환에도 취약하다 보니 수술실에서나 사용하는 무균실 필터인 해파필터까지 사용했답니다.
옷도 아무거나 입지 못했어요. 펭귄들의 천적이 고래 종류다 보니까 검정색을 싫어해서 도망갔기 때문에 옷도 최대한 밝은 색만 골라 입고 천천히 다가갔어요. 빨리 다가서면 놀랄까봐 정말 슬로우 모션으로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이동해서 아이들 곁에 계속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노력하다보니 어느 순간 저를 받아들여주더라고요.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올라요.

Q5. 해양 생물 곁에서 가까이 지낸 만큼 깊은 교류와 유대감을 경험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아쿠아리스트들은 저희의 작은 실수에 의해서 생물이 죽고 살고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생명의 무게감을 절실히 느낀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핸드폰도 절대 끄지 않아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시 출동 태세 인거죠. 저 역시도 단 한 번도 꺼 놓은 적이 없고요. 그런 절실함을 생물들도 느끼는 거 같아요. 진심으로 자신들을 위해준다는 것을요. 거기서 교류와 유대감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요?
2009년 당시 물범이 들어왔을 당시에도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었어요.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담당 아쿠아리스트 분이 24시간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밀착 케어를 했었답니다. 장장 열흘 동안이나 말이죠. 그러다보니 물범도 어느 순간부터 그 아쿠아리스트가 주는 먹이를 먹기 시작하며 안정을 취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아. 이제, 한 고비 넘겼다!”라고 생각한 아쿠아리스트가 휴식을 취하고 오겠다고 하루를 쉬었는데, 담당 아쿠아리스트가 사라지자 물범이 바로 불안해하면서 먹이를 거부했어요. 결국 그 소식을 들은 담당 아쿠아리스트가 만사 제쳐두고 달려와서 먹이를 먹였죠. 애착관계가 너무 강하게 형성 됐나봐요.(웃음)
Q6. 멸종되어 가는 해양 생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아쿠아리움에도 예전과 달리 지금은 보호종으로 바뀐 생물이 있을까요?
예전에는 보호종이 아니었는데,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그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멸종 등급으로 변한 개체가 저희 아쿠아리움에도 많답니다.
생물들은 멸종 위험도에 따라 3단계의 사이테스(CITES) 등급으로 나뉘어져요. 사이테스1종은 멸종 위험도가 가장 높은 거고요, 2, 3종으로 갈수록 위험도가 낮아집니다. 수달, 악어, 육지거북, 바다거북, 상어, 가오리, 나폴레옹 피시 등 해가 갈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죠.
저희 아쿠아리움에 있는 생물 중에 사이테스 1종은 훔볼트 펭귄이에요. 그러다보니 복원을 위한 번식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죠. 연구도 많이 했고요. 그 결과 4세대까지 번식에 성공할 수 있었답니다.
우여곡절도 많았어요. 새둥지처럼 둥지를 트는데 그 둥지도 정말 예쁘게 잘 트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정말 엉망으로 틀어 새끼가 끼어 빼줘야 하는 상황도 있었어요. 막 쪼여가면서 해주는 거죠. 알을 깨고 나올 때 너무 힘들어 하면 조금씩 도와주기도 했고요.
3세대 펭귄 같은 경우는 녹내장을 갖고 태어나 부모가 거두지 않았어요. 자연에서 도태될 것이라 판단되는 아이는 부모도 포기하거든요. 그 펭귄을 아빠 아쿠아리스트가 끼고 키웠어요.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 한 쪽 눈만 안 보이는 거 외에는 다른 문제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답니다. 3세대 아이가 아빠 아쿠아리스트 뒤만 졸졸 쫓아다니면서 다른 펭귄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더라고요. 전혀 어울리지를 못했죠. 본인도 원하지 않았고요. 결국 다른 펭귄들과 잘 어울리게 하기 위해서 별의 별 방법을 다 사용했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3세대에게도 여자 친구가 생기고 4세대까지 보게 된 거예요!
Q7. 마지막으로 아쿠아리스트와 해양 생물의 관계에 대해서 간단히 정의 부탁드려요.
부모와 자식의 개념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희 직원들은 하나같이 다들 ‘내 새끼~내 새끼~’ 그렇게 불러요. 엄마처럼 그리고 아빠처럼 신생아 아이를 다루듯 그렇게 살뜰히 보살핀답니다. 자연 속에서 서식하는 해양생물들은 조금 더 넓은 공간을 누비며 자유를 누리지만, 천적과 질병의 위험에는 언제나 노출될 수밖에 없답니다. 그래서 ‘자유’라는 의미에 대해서 가끔 곱씹고는 해요. 아쿠아리움에 있는 저희 아이들은 ‘공간의 자유’는 비록 부족할지 몰라도 아빠, 엄마 아쿠아리스트들의 관심과 보호 아래 ‘안전한 자유’는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쿠아리움은 인간과 해양생물이 함께 공생하고 있는 작은 자연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조금 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인간의 손길이 조금 더해졌을 뿐입니다. 저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