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탑 내부

MARINE
Marine and people

제주 이호마을 최연소 해녀 이유정
바다의 삶 속에 깃든 흐름과 마주하다

. 편집부

바다의 품에 안긴 해녀의 삶의 소리. 숨비소리. 저승의 경계를 오가며 숨을 토해내는 해녀들의 소리는 그래서 신비롭고도 기이하다. 어느 세상과 연결된 소리일까. 어떤 세상과 만나는 소리일까. 청명하게 너른 바다의 물결 위에는 이런 해녀들의 절실함이 넘실거린다. 안락한 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해녀의 삶을 선택한 이유정은 어떠한 연유로 바닷길에 내일의 시간을 맡긴 것일까. 바다를 위해 바다의 안위를 살피고, 바다를 향해 자신의 안위를 건 넨 제주 이호마을 최연소 해녀 이유정을 만나보도록 하자.

제주 이호마을 최연소 해녀 이유정

Q1. 보통 해녀의 숨비소리를 ‘생애 최후의 날숨’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더군요. 물질 자체를 ‘저승 돈 버는 일’이라고 하니 위험하고도 힘들어서 그러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해녀라는 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릴 적부터 바다 마을에 살며 해녀 삼촌들을 많이 보면서 자랐어요. 그 때만해도 제가 해녀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죠.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지긋지긋한 바다를 떠나 육지로 떠날 생각밖에 없었죠. 어떻게 보면 ‘육지 드림(Land Dream)’이었죠. 환상이 가득했어요. 하지만, 서울살이를 시작하자마자 꿈은 깨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드라마틱한 역전도, 반짝일 줄 알았던 도시인의 삶도 보이지 않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길을 걷는 것만 같았어요. 매일 반복되는 삶. 변화라고는 보이지 않는 나날. 그런 시간 속을 걷는 내내 고민과 방황은 친구처럼 따라 붙었고, 당당했던 저는 점점 고개를 숙여가고 있더군요.
“난 왜 여기에 왔을까? 무엇을 위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고, 서울을 떠나 다시 고향에 돌아왔음에도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 위축되고 우울하기만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멍 하니 마당에 앉아있었는데, 태왁을 메고 해녀 삼촌 한 분이 지나가시더라고요. 어머나. 매일 보던 삼촌이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삼촌 머리 위에 후광이 비치더라고요. “삼촌. 안녕하세요~” 두근거리는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가 인사를 건네고 나니까 눈앞에 길이 보이더라고요. “그래. 해녀가 되는 거야!”
해녀는 세계무형문화재에 등재가 돼 있기 때문에 해녀가 되면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마저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저는 해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한 뒤에 해녀회에 가입하고, 어촌계에도 가입하는 등 여러 가입을 가친 뒤 인턴 해녀 과정까지 완수해 진짜 해녀가 될 수 있었답니다.

Q2. 보통 해녀 분들의 하루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보통 물때에 따라 다른데요. 요새는 7시에 물질을 가면 저는 6시에 일어나 물질을 나갈 준비를 해요. 그 준비는 사실 전날 밤부터 시작돼요. 우선 잠을 잘 자야하고요 장비를 잘 챙겨둬야 해요. 매일 물질 4시간 씩 하는 거 사실 진짜 힘들거든요.
아침이 되면 제 트럭을 몰고 이호 해녀탈의실로 출근을 해요. 막둥이라서 다른 삼촌들보다 조금 일찍 나가 탈의실 주변 청소도 하고, 혹시 삼촌들의 고무 옷이 찢어져 있지는 않은지 면밀히 살펴봐요. 그러다 보면 삼촌 분들이 한 분씩 오시는데, 다들 고령이시라 컨디션은 괜찮으신지 확인하고 삼촌들 옷 입는 걸 도와드려요. 그러고 나서 다 함께 물질을 나갑니다. 다른 회사원들처럼 저희도 시간이 되면 출근을 하는 거죠. 장소가 바다라는 게 다르긴 하지만요.
물질은 보통 3~4시간 정도 하고, 물질이 끝나면 해녀 회장님의 지휘 아래 뭍으로 나가 모입니다. 해녀는 공동체 문화입니다. 함께 출근하고 함께 정리하고 함께 해산하는 거죠. 무거운 태왁은 함께 나누어 들고 채취한 해산물은 수협에서 수매해 가거나 집에 가져가서 먹기도 해요. 모든 일이 끝나면 해녀 삼촌들과 해녀 탈의실에 모여서 온수 샤워를 해요. 정말 최고의 힐링입니다. 거친 바다에서 물질을 한 후에 온수 샤워를 할 때 삼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들 말해요. “이 맛에 물질함쪄게~”라고 말이죠. 이런 소소한 행복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삼촌들을 볼 때면 저도 왠지 모르게 숙연해지고 겸허해지곤 해요. 물질 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배우곤 한답니다.

Q3. 이호마을 해녀 분들 중에서 가장 어리다고 들었습니다. 고령의 삼촌들과 함께 물질을 할 때 도움을 받았던 일이나 위험했던 순간 등,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물질에 서툴다 보니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봐도 해산물이 잘 안 보여요. 그래서 다른 삼촌들에 비해 수확량이 많이 적기도 하고요. 첫 물질을 나갔을 때도 어리바리하게 헤매고 있었는데, 한 해녀 삼촌이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그래서 헤엄쳐서 삼촌 옆에 갔더니 제 태왁(해산물 담는 망사리) 안에 큰 홍해삼 두 마리를 넣어주시더라고요.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챙겨주는 마음이 고마워서요. 그 귀한 홍해삼은 저는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우리 아버지 최고의 술안주가 되었답니다.(웃음)
물질을 하다보면 위험할 때도 많아요. 갑자기 조류가 바뀌기도 하고, 물질하다 폐그물이 오리발에 걸려 위험한 순간도 많아요. 저도 한 번 폐그물에 오리발이 걸린 적이 있었는데, 발이 빠지지 않아서 너무 무서웠어요. 죽을 수도 있거든요. 삼촌들이 안 쪽에 들어와서 물질하라고 했었는데, 그 말을 안 듣고 멀리 나갔던 게 후회되던 순간이었죠. 다행히 혼신의 힘으로 폐그물에서 빠져나오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Q4. 해양의 오염으로 인해 물질을 해도 수확할 수 있는 해산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다를 되살리기 위해 해양 정화 활동도 하고 계신 걸로 아는데요. 바닷속에 제일 많이 버려지는 쓰레기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해양 정화 활동을 통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보통 바다 인근으로 정화 활동을 나가곤 하는데요. 버려지는 것들을 보면 보통 소주병, 플라스틱 조각, 폐 어구, 낚시용 가짜 미끼 등이 많이 발견돼요. 인근에 해수욕장이 많아서 놀러온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바다로 많이 버려지는 것 같아요.
해안가 주변에 쓰레기들이 많이 보인다 싶으면 환경운동을 같이 하는 선배님들과 상의해서 날을 잡고 해양 정화 수거 활동을 해요. 강아지 산책을 시킬 때도 쓰레기가 보면 수시로 수변 정화를 하고요. 이 외에도 물질하다가 폐 그물이나 쓰레기가 많이 보인다 싶을 때도 해녀 삼촌들이 위험할 수 있어서 수정 정화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쓰레기가 없는 날이 없으니 거의 일상이 됐다고 봐야합니다. 많은 날과 적은 날 딱 그 정도 차이예요. 그만큼 해양에 쓰레기가 많이 버려져 있다는 거죠.
그래도 한 번씩 해양 정화활동을 하고 나면 물질할 때 시야도 맑아지고 물 속 환경도 좋아져서 기분이 참 좋아요. 정화활동을 한 다음날 물질은 그래서 엄청 쾌적해요.

Q5. 점점 오염되는 바닷속을 누비다 보면 해양 생물의 변화도 직접 목도하실 듯합니다. 예전과 달라진 바닷속 생태를 설명해 주시겠어요?
저는 이제 물질한지 4년 된 아기 해녀입니다. 해양생물의 변화를 직접 목도했다고 하기엔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녀삼촌들을 통해 예전과 달라진 바다 얘기를 전해 듣고는 해요. 전에는 전복이 날아다니고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물질할 때마다 태왁 가득 전복이 들어있었다는 이야기. 전에는 우뭇가사리, 소라 등 바닷속에 해양 생물이 가득했었는데 요새는 보기가 힘들 정도로 바다가 빈집처럼 변했다는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앞으로가 걱정되고는 해요. 생업에 대한 부분 뿐 아니라 바다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끼고 있으니까요.

Q6. 일반 직장인들의 ‘동료’라는 의미와 해녀들 사이의 ‘동료’라는 의미는 크게 다를 거라 생각됩니다. 물질 시 서로의 목숨을 위해주는 해녀 공동체의 끈끈한 동료애와 일반 사람들의 동료애를 비교해 본다면?
바다로 물질을 나가는 건 목숨을 걸고 나가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매일 물질을 나가도 매일 긴장을 합니다. 그나마 저는 어린 축에 속해서 아직 더 쌩쌩한 내가 해녀 삼촌들을 챙기고 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저를 보면 삼촌들은 “너나 잘해라”라고 하세요. 참 맥이 빠져요. 그래도 저는 삼촌들을 챙기려고 노력해요.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이 이런 기분일까요? 저희 해녀공동체는 동료애라기 보다는 전우애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웃음) 매일 생사고락을 함께 하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위험을 살피고 챙기곤 하니까요. 그래서 함께 있으면 든든하고 떨어지면 찾게 돼요.

Q7. 바닷속에도 사계(四季)가 존재한다고 들었습니다. 계절별 바닷속 생태와 수확물의 변화 등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물질하면서 느끼는 계절별 바닷속 생태와 수확물의 변화 등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희 이호어촌계 바다는 9월에서 5월까지는 소라를 잡고요 수온이 차가운 1~3월은 홍해삼, 3~4월은 돌미역, 5월은 우뭇가사리, 6~8월 성게와 보말, 다시 9월이 되면 다시 소라, 이렇게 사계에 따라 수확되는 해양 생물이 달라집니다.
육지에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무의 옷 색깔이 달라지듯 바닷속에서도 계절에 따라 생물의 서식이 달라진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해조류도 감소하고 백화현상은 심해지고 이로 인해 해산물의 양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러다보니 수확할 수 있는 해산물 양이 줄어들면서 해녀들 역시 줄고 있고요. 자연은 이미 스스로 회복하는 수치를 넘어선 것 같아요. 해녀들의 수확량이 그 증거입니다.바다가 살아나야 해녀의 명맥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참 걱정입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이 행하는 해양 정화 활동으로는 바다를 되살릴 수 없나 봐요.

Q8. 바다와 공생하면서 사는 것이 해녀의 삶인 듯합니다. 함께 공생하기 위해서 지켜야만할 규칙이 있다면?
바다는 대자연이기 때문에 바다를 이기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희 해녀들도 바다를 이기는 게 아니라 읽으려고 합니다. 유속의 변화를 읽고, 조류의 변화를 읽는 등 바다의 흐름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겁니다. 저희 해녀들은 바다가 존재해야 우리 해녀도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Q9. 해양 환경을 보호 및 보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의 최종 목적지는 소각장, 재활용센터, 바다입니다. 그리고 그 중 한 곳인 바다가 제 삶의 터전이며 우리 인류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다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바다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마냥 보고 있을 수가 없거든요.
이제는 기업이나 국가가 나서서 고민하고 해결점을 찾아야만 합니다. 바다는 개인의 것이 아니기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됨을 법으로 명시하고, 바다는 우리의 미래이기에 보전하고 지켜내는 노력을 인류 모두가 행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