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탑 내부

MARINE
Marine and people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고래 사진 작가 장남원
고래가 주는 꿈과 이야기를 전달하다

. 편집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앙 일간지 사진기자로 근무하며 전 세계 전쟁터를 누비던 한 남성이 행로를 바꿔 바닷속 세계로 뛰어든 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국내 유일의 고래 사진작가로 명성이 자자한 장남원 사진작가이다. 그는 수중 속 광각 촬영기법을 초유로 선보이며 거대한 고래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남원 작가의 사진 속에 담긴 고래에는 감정이 서려있고, 사람이 함께 하고, 스토리가 녹아 있다. 새끼를 보호하는 엄마 고래의 모성애와 사람과 소통하고자 하는 고래의 지느러미 짓과 죽어가는 새끼를 살리려는 엄마 고래의 절실함 등이 그의 눈에 담겨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다. 장남원 작가와의 대담을 통해 고래 그 신비한 동물에 대한 베일을 벗겨보도록 하자.

작가 장남원

Q1. 고래가 왜 좋으신가요?
고래의 눈빛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 눈빛 속에는 깊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맑은 영혼이 신비롭게 담겨 있답니다. 오키나와 남쪽 작은 섬 자암에서 우연히 혹등고래를 촬영했는데,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시간이 갈수록 더 생생해지는 게 저를 부르는 것만 같더라고요. 그래서 신문사 기자 일을 접고 고래 촬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고래는 인간보다 더 인간 같아요. 모성의 스케일도 굉장하고, 공감과 소통 능력도 뛰어나요. 조심히 수차례 다가가 고래의 마음을 열고 나면 악수도 해줘요.(웃음) 사실 고래는 보호종이라 함부로 접촉하면 안 되는데, 저희는 고래 촬영 허가를 받았던 터라 접촉이 가능했어요. 그래서 그런 경험도 할 수 있었던 거죠. 40여 년간 수십 차례 촬영을 나가 고래를 만났지만, 아직도 고래를 보면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이 여전히 느껴진답니다. 그 눈빛에 위로를 받으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도 고래를 계속 만나러 가는 것 같아요.

Q2. 40년 가까이 혹등고래만 촬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설명해 주시겠어요?
사실 오키나와 이후에 뉴질랜드에 고래를 촬영하러 갔었어요. 본격적으로 고래를 촬영하기 시작한 거죠. 전부 슬라이드로 찍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서 현상을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결과물에 대한 걱정보다는 촬영 후의 감동과 성취감 그리고 뿌듯함에만 취해있었던 것 같아요. 비행 시간이 12시간 가까이 됐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니까 화장실을 안 간 게 생각나더라니까요. 정신이 반쯤 나갔던 거죠. 결과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엉망이었어요. 물속에서는 근사해 보였는데, 사진으로는 완전히 다르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촬영을 다니면서 기술을 습득해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의 위치에 다다르게 됐답니다.
고래를 촬영하다 보면 다양한 성격의 고래와 다양한 상황에 처한 고래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 번은 새끼 혹등고래가 상어에 머리를 물려 피가 철철 나고 있었어요. 해수면 위로 올라가 숨을 쉬어야 하는데 자꾸 바닥으로 가라앉으려 했죠. 이에 안절부절못하던 엄마 혹등고래가 자신의 몸으로 새끼의 몸을 해수면 위로 밀어 올려 숨을 쉬게 하더라고요. 그런 노력에도 새끼는 자꾸 미끄러져서 바닷속으로 빠지고 엄마 혹등고래는 반복해서 새끼를 숨 쉬게 하려고 하고.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혹등고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4개월여의 과정 동안 식사를 일절 안 할 정도로 모성애가 강하답니다. 천적이 없는 수역은 물이 맑고 안전하지만 엄마 혹등고래의 먹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사를 포기하고 자신의 지방을 태워가면서 새끼에게 젖만 먹이는 거예요. 그러다가 새끼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함께 남극으로 이동해요. 그때부터 어미의 식사도 시작됩니다.

Q3. 수중 촬영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우선 고래의 출몰 시기를 파악한 뒤 출몰 지역을 수소문합니다. 그리고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정하고 그곳에서 고래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거죠. 오랜 경험으로 고래 찾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기다리는 과정에서 고래를 찾고 부르기를 반복해요.
고래가 나타나면 배를 천천히 이동해서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러면 고래는 물속으로 도망가요. 기다리면 또 올라오고, 그러면 우리는 또 다가가고. 고래는 또다시 도망가고.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고래가 도망을 가지 않고 우리를 쓰윽 쳐다봐요. 그때부터 촬영이 시작됩니다.
보통은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서 수중 촬영할 때 산소통도 사용하지 못 하게 해요. 그럴 때는 그저 숨을 꾹 참고 촬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를 누비며 여러 차례 촬영 협조를 구하다 보니 저를 많이 알리게 돼서 수중 깊이 들어갈 때는 산소통 사용을 허가해준답니다. 접촉도 허락해주고요.

Q4.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에 나온 작가님의 고래 사진은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고래의 눈빛에서 전해진 울림이 가슴을 묵직하게 하더군요. 이 드라마에 작가님의 고래 사진이 등장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겠어요?
저는 고래를 촬영할 때 휴머니티를 중시한답니다. 그래서 제가 찍은 고래 사진 속에는 사람이 자주 등장하고요, 감동적인 장면을 포착하고 고래의 생생한 감정을 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작진들이 제 사진을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제작진 측에서 무작정 고래를 찍는 사람을 찾아서 전국 곳곳을 누볐던 것 같은데, 그러던 중 부산의 한 고래 책방에서 저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고래 책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방이었는데 거기 사장님이 저를 알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제작진과 만나고 제 사진을 보여주니 계약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제 사진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Q5. 작년에 오픈한 갤러리에 그간 작업했던 고래들의 사진을 전시했다고 들었습니다. 갤러리를 찾았던 관람객 중 인상에 남는 분이 있다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건지 자폐아의 부모님들이 많이 찾아오셨습니다. 자신들의 집에 사진을 걸고 싶다고 거실 벽 사이즈에 맞춰서 사진 제작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시더군요. 한 생물학계의 교수가 ‘인간을 제외한 동물 중에서 장애를 가진 개체를 돕는 것은 고래가 유일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드라마 속 우영우라는 인물이 고래로 인해 받았던 감정적인 변화를 본인들의 아이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졌어요.
자주 찾아와 사진 옆 벽에 기대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계시다 가는 분도 계셨어요. 고래가 주는 편안한 기운이 느껴져서 마음이 힐링된다고 하시더군요. 저 역시 갤러리 문을 열고 불을 켜고 나면 한 바퀴 천천히 돌며 고래들과 눈을 맞춰요. 인사를 건네는 것이 목적이긴 하지만, 저 역시 고래들을 지긋이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Q6. 멕시코 수중 동굴을 촬영하다가 패혈증에 걸려서 돌아가실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고래 촬영을 나가신 이유가 뭔가요?
멕시코 정글 안에 수중 동굴이 있어요. 하루에 딱 2시간만 빛이 들이치는데 그 장면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촬영하러 갔는데, 물이 너무 반짝이고 맑아 보이길래 맛을 좀 봤어요. 그때 패혈증에 걸린 것 같아요.
병원에 입원해서 하루에 항생제를 8병씩 맞았어요. 거의 한 달간 490병을 맞고 나니까 패혈증이 잡히더라고요. 그 후에 수술에 들어갔어요. 심장, 간, 대장, 다리를 전부 갈라서 고름을 뽑아냈어요.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퇴원했는데, 6월에 통가(Tonga, 폴리네시아 지역에 위치한 국가)에서 고래를 촬영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고민이 많았죠. 그때가 2013년 5월 이었으니까 퇴원한 지 한 달 만에 수중 촬영이 가능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그래도 우선 가보자 싶더라고요. 식구들은 펄쩍 뛰면서 정신 나갔다고 만류하고, 나는 가겠다고 고집 부리고, 집이 난리가 났었죠.(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고래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던 것 같아요.
결국 고래 촬영은 실패했어요. 몸이 따라주지 않았거든요. 고래를 쫓아가야 하는데 자꾸 뒤처지더라고요. 그렇게 몇 번 도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기진맥진한 채 배 위에 앉아있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패한 경험이지만, 또 같은 상황을 맞닥뜨려도 저는 다시 갈 것 같아요. 아마도 목표를 정하면 절대 멈추지 않는 성격 때문이겠죠.

Q7. 고래는 인간에게 호의적이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포경을 하는 국가들이 있는 동시에 인간이 마구잡이로 버린 생활 쓰레기로 인해 바다 환경도 오염돼 가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엄마 혹등고래가 맑은 물에서 새끼를 잘 키워서 남극으로 내려가는 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시나요? 바로 포경선이예요. 우리나라도 1985년 11월 1일부로 포경이 완전히 금지될 때까지 포경산업이 흥행했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포경을 하는 국가들이 남아 있어요.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은 고래를 활용해 영양보충제나 화장품을 제조하기도 하고 식용으로 먹기도 해요.
이러한 직접적인 포획 외에도 고래를 죽이는 건 또 있답니다. 바로 바다 생태계의 오염이에요. 이 또한 인간 때문이죠. 폐플라스틱 및 해양 쓰레기로 인해 생명을 잃은 해양 생물들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흔하게 발견되고 있고, 바닷속 세상도 해가 다르게 황폐해지고 죽어가고 있답니다. 그래서 저도 한동안은 해양 쓰레기를 제거하기 위해 다이버들과 함께 바닷속에 들어가 해양 정화 활동에 참여하고는 했었지만, 아무리 제거해도 늘어나기만 하는 해양 쓰레기들을 목도하니 의욕 자체가 사라지더군요. 지구의 오염을 경각하지 않는 인간들의 의식 전환이 더 시급한 것 같아요.

Q8. 마지막으로 고래를 보전하고 공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이든 관심이 있어야 보호가 시작되고 보전이 이루어지고 공생 이 가능해집니다. 고래뿐만이 아니라 많은 해양 생물을 보전하기위해서는 지구를 아끼는 마음이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생각을 재정비하고 생활 습관을 고치고 미래 지구를 위한 노력을 이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굉장히 다양한 고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몇 종류의 고래가 어디에 서식하는지 어느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으니 보호하기 위한 법적인 대책조차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해양보호종인데 말이죠.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보호가 필요한 해양생물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바다를 사랑해 주세요. 그 안에 서식하는 수많은 해양 생물을 아껴주세요. 지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