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탑 내부
MARINE
Marine and people
바다를 사랑한 사람들-1. 윤혁순 감독
경이로운 바닷속 해양생물의 신비를 담아내다
윤혁순 감독은 한 길 물속을 훤히 꿰뚫고 물길을 따라 살아온 해양다큐멘터리 감독입니다. 그의 관심은 해양생물과 바닷속뿐이라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사는 삶을 택했다고 합니다. 해양생물을 쫓아 세계 곳곳을 누비다 보니 어느새 40년 세월이 흘러 희끗한 백발만 성성해졌습니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바다라는 세상과 함께 동행한 윤혁순 감독의 일대기를 들여다보도록 합시다.

Q1. MBC강원영동과 1년 동안 수중로드다큐멘터리 ‘그린 아쿠아리움 동해’를 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힘든 과정이었겠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독도에서 울릉도 그리고 고성에 이르기까지 수중과 육지를 오가며 촬영이 진행됐습니다.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80% 이상이 수중에서 나머지 20%가량은 육지에서 촬영했습니다. 바다를 더 심도있게 이해하기 위해 촬영 비중이 수중에 집중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해양 속 생태계를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고,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역동하는 바닷속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용치놀래기가 자리돔을 청소해 주는 장면을 처음으로 포착해낼 수 있었고, 잘 알려지지 않은 해양생물과 수중 곳곳에 숨은 비경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독도는 해양생물의 핵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00여 종이 넘는 해양생물 중 제가 영상에 담아낸 것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거 아시나요? 해수면을 바라보면 언제나 같은 모습이지만, 바닷속 풍경은 해마다 그리고 매순간마다 달라진다는 것을요. ‘그린 아쿠아리움 동해’를 통해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바닷속 풍경과 해양생물들이 가진 생명의 힘을 직접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용치놀래기

자리돔



무늬오징어
Q2. 계절마다 달라지는 바닷속 해양생물의 세계를 설명해 주시겠어요?
동해바다는 난류성 물고기와 한류성 물고기가 함께 살기 때문에 계절별로 교차하고 이동하는 회유성 어종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오징어계의 제왕이라 불릴 정도로 쉽게 볼 수 없는 무늬오징어는 보통 바다 표층 100m 아래에서 서식하지만, 여름철이면 해안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에 촬영이 가능해집니다, 해조류는 육상식물이 계절별로 성장 변화해가는 것과는 달리 해수 자체에 몸을 의지하고 살면서 체표면으로 각종 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육상식물과 생태 자체가 다릅니다. 형태도 완전 다르고요. 물결의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기고 해면을 향해 성장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그 고요한 생명력에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답니다.
간단히 말해 육지에서는 계절이 동적으로 바뀌지만, 바닷속의 사계는 정적으로 바뀌어 계절의 흐름을 잔잔히 지켜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Q3. 가장 기억에 남는 해양생물은 무엇이었나요?
코코넛문어(Coconut Octopus) 입니다. 코코넛문어는 무척추동물 중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아주 드문 예로 꼽힙니다. 문어 자체가 지능이 높은 동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코코넛 껍질을 들고 다니다가 숨을 곳이 없을 때 자기방어를 위해서 코코넛 껍질을 뒤집어 씁니다. 정말 각종 문어들을 수없이 봐 왔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희귀한 생물이었습니다.
피그미 오징어((Pygmy Squid)의 교배 순간도 기억이 납니다. 야행성 생물인데다가 겨우 1cm 남짓한 사이즈로 작디 작아 발견하기 조차 힘든 종이었는데, 교배의 순간까지 포착할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교배 후 힘든 산란을 마친 피그미 오징어가 머리 부분을 잘피에 붙인 채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참 안타까웠습니다. 생과 사가 세상의 이치라고는 하지만 새 생명을 남기기 위해 희생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코코넛문어

피그미오징어
Q4. 왜 육지가 아닌 바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고향이 강릉이기 때문에 바다가 일상 가까이에 있었고, 가까이에 있기에 늘 찾고 보고 했습니다. 제가 바다를 좋아하게 된 건 어찌 생각해 보면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삶의 일부였으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일부에서 전부가 되어 버려서 제 삶의 8할은 바닷속에서 보낸 것 같네요.
태초에 모든 생물은 바다에서 탄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이 답답할 때 바다를 떠올리는 건 아마도 생의 근원을 찾아가려는 본능적인 이끌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저 이끌리다가 매혹돼 버려서 그 안에서 살기를 자처한 것 뿐이고요.

할리퀸 고스트 파이프 피쉬

Q5.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의 바다를 여행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나라별 해양의 모습은 어떻게 다르던가요?
육상 위의 생태계에 따라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고 생을 이어가듯 바닷속 생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사는 지역이 달라 생물종이 달라지는 것 뿐입니다. 각 나라별 인종이 다르듯 말이죠. 하지만, 파푸아뉴기니는 많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지구의 마지막 오지라 불리는 파푸아뉴기니는 원시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만큼 순수하고도 깊은 아름다움을 자아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해양생물과 말로만 들었던 할리퀸 고스트 파이프 피쉬 등을 비롯해서 마크로 생물종 들도 다양하게 목도 돼서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장관은 산호초 군락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신비로움이었습니다. 파푸아뉴기니가 왜 다이버들에게 꿈의 성지가 됐는지 알 것만 같았습니다.
Q6.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해양 속을 촬영했으면, 해양 오염의 실태와 변화에 대해서도 많이 경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바다의 삶은 어떤가요?
한 해 한 해 흘러갈수록 성장해 가는 문화와 경제 속에서 바다 역시 나처럼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바다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바다를 탐욕과 성장의 수단으로 삼았지만, 바다는 조용히 연륜을 드러내며 인간의 욕심어린 투정을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각종 어업 쓰레기에 해양생물들이 죽어가는 걸 바라만 봐야 하고, 무분별한 남획으로 사라져가는 해양생물들을 그리워해야 하니까 말이죠. 이미 이러한 상황을 눈치채고 바다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곳곳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해양생태계가 복원돼야 인류의 생태계도 유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겠죠. 개개인의 작은 노력으로도 바다를 조금씩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을 지양하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동참한다면 바다는 우리 곁에서 오래도록 푸르게 살아나갈 것입니다. 함께 노력하도록 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