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탑 내부
MARINE
Marine and people
바다에 반해 해양동물 보전을 위한 삶을 택한
국내 1호 해양동물 수의사 이영란
이영란 대표는 우리나라 1호 해양동물 수의사로 유명합니다. 푸른 바닷속을 유영하는 고래를 처음 본 순간, 그 아름다움에 반해 반려동물 수의사에서 해양동물 수의사가 되었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와 WWF-Korea (한국세계자연기금)의 해양보전팀장 등을 거치면서 해양동물 보전 분야에 새롭게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 초 플랜오션을 설립하고 오랜 꿈인 ‘깨끗한 바다를 지켜나가는 보전 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해양생물을 사랑하며, 생물다양성을 위해 인간과 공존하는 법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 이영란 대표를 만나보았습니다.

‘우리나라 1호 해양동물 수의사’로서 남다른 길을 걸어오셨는데, 어떤 계기로 해양동물 수의사가 되셨는지요?
처음엔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로 시작했습니다. 일할수록 좀 더 잘 맞는 일이 있을 것 같았어요. 원래 바다를 좋아해서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곤 했는데, 어느 날 고래와 함께 선 수의사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바로 저거다’ 싶었죠. 고래가 정말 사랑스러웠고, 고래와 함께 서 있던 그 사람과 같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해양동물 수의사의 길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는 해양동물 수의사라는 직군 자체가 없던 때인데, 일을 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여기저기 문을 두드렸지만 ‘해양동물 수의사’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때라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국내 유일의 고래연구기관인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서 생물학적/생태학적 연구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급여는 매우 적은 수준이었는지만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의욕적으로 일하면서 해양동물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갔습니다. 그 후 울산 고래생태체험관 촉탁 수의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등을 거치면서 점점 저의 활동이 알려짐에 따라 사람들이 저를 ‘국내 1호 해양동물 수의사’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해양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대부분 한국이나 미국에서 야생에 있거나 사육시설에 있는 해양포유류를 살아있거나 죽은 상태로 만났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게 많지만, 아무래도 상괭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아시아에 살고 매년 많은 수가 물고기 그물에 걸려 폐사하는 상괭이의 온전한 모습을 보는 경우는 대부분 부검할 때 죽은 사체뿐입니다. 야생에서는 수줍음이 많아 등만 조금 보이거든요. 예전에 고래연구소와 부산아쿠아리움이 함께 남해 상괭이 구조·치료해서 방류한 적이 있어요. 그때 구조·치료하고 연구를 함께하며 이름까지 붙여줬던 상괭이들이 기억납니다. 아직도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해양동물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구에서 해양이 차지하는 면적과 해양환경 등을 고려하면 해양생물은 육상생물에 비해 더 큰 폭의 생물다양성을 갖추고 있어요. 저온·초고압의 극한 해양환경에 적응하여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물에 비해 접근과 의료시술이 어렵습니다. 예컨대 강아지가 아프면 잘 붙잡아서 검사도 하고 치료도 할 수 있지만, 돌고래가 아플 때 혈액검사나 초음파도 해야 하는데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야생의 해양생물은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마취하거나 포획해서 의료시술을 합니다.
해양동물 임상 수의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양동물 보전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2017년 해양포유류 구조 활동을 주로 하는 ‘미국 해양포유류 센터’에서 약 3개월간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해양동물 보전으로 방향을 정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인간 활동이나 환경오염으로 인해 죽어가는 해양동물을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인간이 자연에 잘못하고 있는 게 참 많다는 것, 그리고 해양동물의 행복을 위해 건강한 환경에서 인간과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도록 보전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동물 스스로는 할 수 없고 오직 인간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동물의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해양동물 임상 수의사에서 해양동물 ‘보전’ 수의사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해양동물 ‘보존’ 수의사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는데요, 해양동물이 살 수 없는 바다는 결국 인간이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살 수 있는 바다로 만드는 노력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예컨대 지속 가능한 수산물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고, 해양 쓰레기 줄이거나 해양보호구역 늘리기 등 결국 지속 가능한 바다를 만들려는 활동들이죠. 이런 활동들을 통해 우리나라 해양동물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WWF-Korea(한국세계자연기금)’의 해양보전팀장이 됨으로써 본격적으로 해양동물 보전 분야의 경력을 쌓으셨는데,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WWF-Korea(한국세계자연기금)’의 해양보전팀장에 지원하여 합격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해양동물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현장에 나가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활동보다는 해양보전에 필요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제가 일하던 해양보전팀의 주된 업무였어요. 특히 생태계 보전과 지속 가능한 어업 활동 확대 등 2가지가 가장 핵심적인 사업 방향이었습니다. 해양보전 분야도 해양동물 임상 수의사처럼 국내에 보편화 되어있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쉽지 않았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기쁨과 보람은 정말 컸습니다. 언제나 저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인가, 내가 진정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길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선택하기 때문에, 해양동물 보전의 길도 즐거웠고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최근 비영리법인 ‘플랜오션’을 설립하고 초대 대표를 맡으셨는데, 그 설립 과정에 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오래전부터 한국에도 해양동물 보전을 위한 전문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오다가 이번에 마침내 플랜오션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깨끗한 우리 바다를 위해 플랜을 세우고 실천해 나간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도 ‘플랜오션’입니다. 해양보전은 제가 정말 즐겁고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분야이기에, 플랜오션 설립도 후회 없는 선택이 되리라 믿습니다. 바다를 지키고 보전하자는 데에 뜻을 같이해 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김수암 부경대 명예교수님, 육근형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실장님, 이정미 NTT코리아 부사장님, 이성일 부경대 교수님, 홍연정 웨스턴동물의료센터 대표 원장님이 초대 이사회를 구성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드라마 ‘우영우’에서 웃는 얼굴로 묘사되어 유명해진 돌고래 ‘상괭이’ 보전에 힘을 쏟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돌고래 ‘상괭이’는 어업 그물에 걸려서 죽는 경우가 무척 많은 멸종위기종 해양동물입니다. 우선 죽은 상괭이의 부검 연구로 죽은 원인을 밝히고 개체가 가진 정보와 바다의 건강 상태에 관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한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국제포경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국제 콘퍼런스도 개최합니다. 상괭이와 같은 멸종위기종 관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멸종위기종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생태계를 만든다면 모든 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가 되는 것입니다.
향후 활동 방향 및 계획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플랜오션을 통해 ‘생태계·생물다양성 보전’ 및 ‘지속 가능한 수산업(어업, 양식업) 확대’ 등 2가지 방향으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우선 상괭이 보전 사례처럼 생태계 보전을 위해 필요한 플랫폼, 네트워크를 만드는 등 생태계 보전에 필요한 시스템을 조성해 나갈 것입니다. 또 지속 가능한 수산업을 확대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바다를 가장 많이 훼손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불법 어업, 폐그물∙폐어구로 인한 혼획 등과 같은 잘못된 수산업 활동인데요. 바다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고 해양동물을 보전하면서 수산업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해양동물 분야가 아직도 미개척 분야이다 보니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또 바다 생태계를 건강하게 보전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요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우리 바다를 건강하게 보전해 가기 위한 큰 그림을 그려나갈 것입니다.

